제4 강 사과나무 그늘을 사모하라(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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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한 청년이 연모하는 아가씨에게 2년 동안 무려 700통의 연애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연애편지를 받은 그 아가씨는 그 청년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편지를 전달해준 우편배달부였습니다. 매일 한통씩 편지를 썼는데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진정한 사랑은 육체적인 결합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물질이나 권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예수그리스도의 중매로 인격과 인격, 영혼과 영혼의 만남 속에서만 아름답게 꽃이 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의 농도가 점점 더 진해져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도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져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자신의 부족을 알아야 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술람미가 이렇게 노래합니다.<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자기부족을 모르면서 나는 은혜 받았다, 나는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술람미는 자기자신의 부족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무슨 말입니까? 나는 매서운 모래바람 불어오는 샤론 광야에 핀, 한 송이 들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파른 골짜기에 외롭게 핀 한 송이 백합화에 불과하다고, 술람미는 자신의 부족을 진솔하게 내어놓습니다.
이 세상은 근심, 걱정이 가시지 않는 샤론광야와 같습니다. 언제 발을 헛딛어 떨어질지 모르는 천길낭떨어지와 같습니다. 솔로몬이 대답합니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술람미 당신은 많은 여자들 중에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와 같소.>
성경에서 가시나무는 저주받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화와를 불러놓고 저주하십니다. 아담과 화와만 저주를 받았습니까?
땅도 함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3:17절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머리에 뭘 쓰셨습니까? 가시나무로 만든 관을 쓰셨습니다. 왜 하필 가시관을 쓰셨을까요? 세상이 받을 저주,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를 주님께서 한 몸에 짊어지고 죽으신 의미가 있습니다.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로구나> 백합화는 험한 골짜기에 자생합니다. 그런데도 그 자태가 청순하고 고귀합니다. 백합화는 거룩하고 순결한 성도를 상징합니다.
우리성도들은 비록 주어진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백합화와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왜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장래의 소망이다르고, 삶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 믿음의 선배들은 그 어떤 고난과 시련도 참았습니다. 머리를 깍이고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십자가 붙들고 살았습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가시밭에 백합화 성도들이여, 하늘에 저 나라를 바라보아라, 영광의 광채 속에 열두 진주 문 우리를 위하여서 예비 하셨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우리는 샤론 광야 같은 죄악 세상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선화일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수 없는, 답답하고 괴로운 세상에서, 주님만을 바라보며 사랑의 꽃을 피우는 백합화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앞에 내 부족과, 내 원통함과, 내 소원을 내어놓고 <나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나는 외롭고 고독합니다. 나를 도와주실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하고 기도할 때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사과나무 그늘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3절에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어떤 구두쇠 남편이 있었습니다. 너무 돈 밖에 모르고 아내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어느 날 퇴근해 오는 남편에게 부드러운 말씨로 한마디 건넸습니다. <당신, 오늘 백마탄 왕자 같네.>라고 했더니, 그 남편은 <야, 그만 치아삐라, 백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돈 달라고 그러지, 나 돈 없어>라고 하더랍니다.
남자들은 아내의 시원한 사과나무 그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시원한 그늘, 아내의 행복을 채워주는 사랑의 그늘, 오늘 본문에 보니 솔로몬은 술람미를 위한 사과나무 그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1)사과나무 그늘 밑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있습니다.
본문 3절에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심히 기뻐했다>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술람미는 사과나무 그늘 밑에 앉아 맛있는 열매를 따 먹고 있는 행복감에 젖어 있습니다.
여기 사과나무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주님 십자가 그늘 밑에는 은혜와 복이 있고, 내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십자가 그늘 밑에는 생명의 열매가 있습니다.
주어진 삶의 현장속에서 구체적인 주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마치 사과나무 그늘아래 앉아 맛있는 열매를 따 먹는 것같이 기도의 응답을 체험합니다.
믿음이 없는 분들은 이해가 안될지 모릅니다.마는, 신앙생활의 깊은 맛을 아는 분들은 예수 믿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라스베가스에 가서 땡기는 것, 젓방 살림입니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술마시고 춤추는 것, 그게 무슨 재밉니까?
2)사과나무 그늘 밑에는 보호와 평안이 있습니다.
저는 캘리포니아가 사람살기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태양빛이 뜨겁게 내려 쪼여도 나무 그늘 밑에만 들어서면 시원해지지 않습니까?
몇 년 전<리처드와 리사>라는 젊은 백인부부가 방학을 맞아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유타의 한 캠핑장에 휴가를 갔습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급히 큰 나무 아래로 피신했습니다. 나무 밑에서 이들 부부가 앉아있던 금속 의자에 갑자기 번개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현장에서 즉사하고 세 아이만 살았습니다. 9살,5살,2살 된 세 남매가 엄마 아빠의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 극심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완전한 그늘이 없습니다. 여기저기 온통 가시나무 뿐입니다. 이것이 그늘인가 하고 들어가 보면, 어느새 강도로 변하고, 저곳이 그늘인가 하고 들어가 보면 어느새 사기꾼의 냄새가 풍겨납니다.
본문 6절에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 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여기 오른손은 능력을 상징하고 왼손은 보호를 상징합니다. 시편 17:7절은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 손으로 구원하시느니라.>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거할 성을 찾지 못하여 광야 사막길에서 방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길이 아닌 곳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시편 107:4절이하에 보면, 시편기자는 헛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주님은 지금도 사과나무 그늘 되신 자기 십자가 밑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사과나무 그늘 밑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있습니다.
술람미는 지금 솔로몬과 누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방해를 받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노루와 들 사슴>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한국 사람들은 녹용을 생각합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있어서 <노루와 들사슴>은 낭만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노루와 들 사슴으로 부탁한다.> 내가 당신에게 사랑과 애교로 부탁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부터 남편에게 무엇을 부탁할 때, 아니면 아내에게 무엇을 부탁할 때는 이렇게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보, 노루와 들 사슴으로 부탁해요> 자, 옆사람 보시면서 <집사님, 노루와 들 사슴으로 부탁합니다.>
<흔들어 깨우지 말지니라.> 이것은 사랑의 깊은 잠에서 제발 깨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영적인 의미는 주님과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 중에는 주님과의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품안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사이에 끼어들어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봉사를 훼방하고, 헌신을 훼방하고, 기도의 시간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늘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부처가 그늘인줄 알고, 알라가 그늘인줄 알고, 공산주의가 그늘인줄 알고, 그 그늘 밑에 피하려고 합니다. 청화대나 청치권력이 그늘인줄 알고, 물질과 명예가 그늘인줄 알고 그곳에 안식과 평안이 있는 줄 잘못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외에는 세상 그 어느 곳도 우리를 보호하고 영원한 평안을 줄 그늘은 없습니다. 시편 121:5절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에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늘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는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그 주님 십자가 그늘 밑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이 있고, 그리고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서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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