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 강 사랑의 완성(아 8: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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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지혜를모아놓은 탈무드라는 책에 보면, 머리가 둘이고 몸이 하나인 기형적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랍비를 찾아와서, 이 아이가 한 사람인지 두사람인지 물었습니다. 랍비는 이 질문에 대해, 한쪽 머리를 때려서 둘 다 울면 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가 아니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부부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부부가 정말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는지 아닌지는, 남편의 몸이 아프면 부인도 아파하고,부인이 아플 때 남편이 진심으로 아파하면 서로 사랑하는 부부임에 틀림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이야기인 아가서 강해 13번째 마지막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아가서에 나타난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대로, 두사람은 그리워 못견딜 정도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때로는 두사람의 사랑이 시련을 맞아 위기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두사람이 완전한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다보면 주님과의 완전한 사랑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어떤 신앙의 과정, 어떤 단계를 통과해야 주님과 완전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본문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와 주님과의 사랑이 아름답게 완성되어 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사랑의 완성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죄의 잠에서 깨어나는 단계입니다.
세상에 여자로 태어나 술람미 만큼 행복한 여인도 드물 것입니다. 술람미는 예루살렘의 유수한 가문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미스 이스라엘 출신도 아니었습니다. 레바논의 수넴이라는 시골 산기슭의 포도원지기였습니다. 게달의 장막같이 얼굴이 새까맣게 타 볼품없는 시골뜨기 촌 여자였습니다.
시골처녀 술람미가어떻게 일국의 왕인 솔로몬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까? 무슨 재주로 수많은 여인들을 제쳐두고 솔로몬왕의 왕비가 될 수 있었습니까? 본문 5절 하반 절에 이렇게 말합니다.<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솔로몬을 만나기 위해 술람미가 예루살렘으로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왕이 먼저 레바논의 수넴이라는 시골 산기슭까지 술람미를 찾아왔습니다. 술람미는 오라비의 포도원지기나 하면서 평생 시골 촌뜨기 아낙네로 살아가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술람미를 찾아와 사랑의 눈을 뜨게 했던 것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을 만나 눈을 뜨게 된 곳이 어딥니까?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여기 사과나무는 <갈보리 언덕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술람미가 사과나무 아래서솔로몬을 만났듯이,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십자가 밑입니다. 우리는 내가 교회를 찾고, 내가 주님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갈보리 언덕 십자가 밑으로 부르셨고, 그 십자가 밑에서, 우리를 죄의 잠, 사망의 잠에서 깨어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국을 보세요. 지금 돈 냄새에 묻혀 사는 사람 많습니다. 정욕에 눈 어두워 정신 차리지 못하는 사람, 권력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죄의 잠, 사망의 잠을 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죄의 잠에서 깨워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사랑의 완성을 위한 두 번째 단계는 주님의 품에 새긴바 되는 단계입니다.
본문 6절에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술람미가 신랑인 솔로몬에게 부탁하는 말입니다.
구약시대 인과 도장은, 우리나라처럼 한 사람의 권세나 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증하는 매우 중요한 물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를 가거나, 심지어 밤에 잠을 잘 때에도 인장을 팔에다 끈으로 매거나,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에게 자신을 인과,도장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가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술람미는 자신이 솔로몬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고, 여호와의 불처럼 뜨거운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 12가지를 들어 만든 이야기가 있습니다.
<돌은 강하다. 그러나 쇠에 꺽인다. 쇠는 불에 녹는다, 그 불은 물로 끌 수 있다. 물은 증발하여 구름에 흡수당하고 만다. 구름은 바람에 날린다. 모든 것을 날려 보내는 바람도 사람만은 날려보내지 못한다. 사람은 고민으로 파괴된다. 그러나 고민은 술로 달랜다. 잠은 술보다 강하다. 잠도 죽음만큼은 이기지 못한다. 죽음은 강하다.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가장 강하고 무서운 죽음,그러나 그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렇습니다. 열열한 사랑은 죽음도 넘고, 국경도 넘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생명까지 바칠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입니다.
한국 김해의 한 양계장에 불이 났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양계장이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된 현장에 병아리 몇 마리가 살아있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품에 안고 꼼짝도 하지 않은채 자신은 불타 죽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죽인 원수인 로마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지난 2천년 인류역사 가운데 수많은 살인, 강도, 간음한자들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품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품기울 때, 엄마 품에서 살아난 병아리처럼,뜨거운 화염도, 총칼도, 사단마귀의 그어떤 세력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35절 보면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느니라.>
우리가 주님과의 완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님의 품에 새긴바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40:11절에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 하시느니라>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주님의 품에 안겨지고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랑할 때, 생명을 걸고 불같이 강렬하게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품에 인과 도장같이 새긴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품에 인과 도장같이 새긴바 될 때,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이사야 66:11절에는 <너희가 젖을 짜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주님의 품은안전한 보호가 있습니다. 세상이 흉내낼수 없는 평안이 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땅에서의 풍성한 축복이 있고, 영원한 사랑과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품안에 새긴바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과의 사랑을 완성하기위한 세 번째 단계는 주님과 동행하는 단계입니다.
우리가 죄의 잠에서 깨어나 주님의 품에 새긴바 되었다면, 이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5절에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자가 누구인고?> 여기 <거친 들>은 사나운 맹수나 강도떼가 출몰하는 광야와 같은 죄악 세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술람미는 지금 왕비가되어 거친들을 지나 친정집으로 금의환향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의지한다는 것은 신랑의 몸에 기댄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기댈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믿을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자, 그분은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은 지금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저와 여러분을 안식의 장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문제, 사업의 어려운 문제, 식구들의 질병문제 누구에게 맡겨야 합니까? 내 모든 사정을, 내 모든 문제를 알해결해 주실 수 있는 그분주님께 맡기고 해결 받으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주위사람들을 보면, 분명 주님께서 함께 동행 하고 계심이 제 눈에는 보입니다. 그 사람을 향하신 주님의 뜻과 계획이 내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는 주님의 뜻과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만을 의지하면, 에벤에셀 주님의 손길은 언제나 나를 도우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본문 10절에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솔로몬과의 사랑이 완성되어 행복에 젖어 있음을 보여주는 술람미의 고백입니다.
지난날 오라비들은 여동생 술람미를 많이 걱정했습니다. 8절에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술람미가 솔로몬의 신부가되기에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방이 아직 영글지 않은 어린 시절의 술람미가 아닙니다. 오라비들이 걱정할 만큼 연약한 술람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과의 사랑을 이루어낸, 아름다운 신부, 영원한 행복을 한손에 쥔 신부, 모두가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일국의 왕비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과의 영원한 사랑의 완성을 위해 우리 죄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어떤 핍박과 고난이 있더라도 주님을 죽도록 사랑하여 주님의 품에 새긴바 되는, 인과 도장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술람미와 같이 우리 모두 그 어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며, 주어진 시련을 잘 극복하므로 주님과의 완전한 사랑을 이루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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