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 강 지금은 내 신앙을 점검할 때(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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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알의 밀을 땅에 심었습니다. 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겉껍데기가 아닙니다. 속껍데기도 아닙니다. 녹말부분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알의 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의 생명인 씨 눈입니다.
밀을 땅에 심으면겉껍데기 썩어집니다. 속껍데기도 썩고 녹말부분도 썩습니다. 그러나 생명인 씨눈은 썩지 않습니다. 잠시 죽었다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죽는 것을 우리는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는다는 말의 본래 원어의 뜻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잠자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원히 썩지 않는 밀의 생명인 씨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겉껍데기, 속껍데기, 녹말 등, 썩어질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제가 지난 전주 설교시간에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가마타고 하늘나라로 시집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마는 타고 있으면서 가마의 목적지가 어딘지 모릅니다. 가마 탄 신부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갖추어야할 자세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과 결혼에 꼴인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힘든 고비를 넘겼습니까?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를 얼마나 부러워했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솔로몬과 술람미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합니다. 큰 시련에 부닥치고 있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이 왜, 무슨 이유로, 어떤 문제 때문에 시련을 맞게 된 것까요? 저는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현주소가 어딘지를 점검해 보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신앙의 나태와 방심을 경계해야합니다.
깨가 쏟아져도 한참 쏟아져야 할 솔로몬과 술람미의 결혼생활에 드디어 문제가 생겼습니다. 본문을 잘 읽어보면, 문제의 발단은 신부인 술람미의 나태함과 무사안일,그리고 방심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밤늦게까지 국사를 보다가 술람미의 침실을 찾아와서 방문을 뚜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이 들기는 하였으나 문 뚜드리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그러면 문 뚜드리는 소리를 듣고서도 왜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까요? 3절에 보면 이유가 나옵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
팔레스틴 지방 사람들은 샌달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쉽게 발이 더러워지게 됩니다. 그들은 발에 묻은 먼지를 죄에 오염된 것으로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집에 들어오게 되면 죄를 씻는 의미로 반드시 발을 씻어야 합니다. 그리고 잠을 잘 때는 속옷까지 다 벗은 다음에 홋 이불을 덮고 잠을 자는데, 아마 술람미도 옷을 벗은 채 잠자리에 든 것 같습니다.
신랑이 찾아왔는데 왜 술람미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발 씻고, 옷 벗고 누워자는데 귀찮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술람미가 아닙니다. 지난날 술람미가 솔로몬을 한참 사랑할 때, 얼마나 애걸복걸 했습니까?
솔로몬이 노루처럼 산넘고 물건너 달려와서 창문을 뚜드리는 상상을 하면서 잠 못 이룬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밤중에 맨발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찾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열정적이던 술람미가 왜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일까요?
본문 2절에 보면이번에는 솔로몬이 애걸복걸 하고 있습니다.<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좀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지금 문 밖에는 신랑이 밤이슬을 맞으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애타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부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1)신랑에 대한 신부의 사랑이 식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따뜻한 방에 누워 잠자는 것이 신랑보다 좋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교인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주님의 품보다 세상재미가 더 좋고, 금요예배 드리는 것보다 텔레비전앞에 앉아서 TV연속극 보는 것이 더 즐겁고.
예수 잘 믿는 어떤 총각집사가 있었습니다. 교제를 하던 여자가 그만 변심을 해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습니다. 눈물로 한숨짓던 그 총각집사가어느 날, 이제 깨끗이 잊고, 행복을 빌어주어야지. 그래서 축하 전보를 쳤습니다. <당신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오. 요한 1서 4:18절>
요한 1서 4:18절이 무슨 내용일까요?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그런데 전화국에서 실수로 요한 1서 4:18절인데, 1서라는 말을 빼 먹고, <요한복음 4:18절> 하고 전보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보를 신랑이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18절이 무슨 내용일까요?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남여의 사랑도 방심은 금물, 우리의 신앙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내가 이정도면 설마 천국 가겠지! 내가 집사, 권사 장로인데, 이래 봐도 성경을 10독이나 한 사람인데, 이런 영적교만도 금물입니다. 형편 좀 풀리면 헌신하겠다고 말합니다. 좀 한가 해지면 열심히 교회에 다니겠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요?
<사랑하는 자야 문 좀 열어다고.>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내 마음 문을 뚜드리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이 아닐까요? <나의사랑,나의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여, 사랑하는 명집사야 제발 문좀 열어다고.>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신앙의 길에서 더 이상 방심하지 마시고, 태만하지 말고, 불원간 주님 앞에 설때, 죽도록 충성하고 헌신하여 유구무언이 아닌, 뭔가 할 말 있는 자리 만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기회를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본문 2절 하반절에 보면 <신랑의 머리에 밤이슬이 가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랑이 신부의 방문을 한두 번 두드리다가 돌아간 것이아닙니다. 어느 정도 상당히 긴시간동안 문을 계속 뚜드렸음을 말합니다.
6절에보면 신부가 뒤늦게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은 이미 떠나버린 뒤였습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당시에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천명이나 되는 처첩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왕이 그 많은 처첩을 제쳐두고술람미의 처소를 찾았다, 이것은 술람미에게 더 없는 행복의 기회아닙니까? 그런데도 술람미는 너무나 안일한 나머지, 방심과 나태로 그만 행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와 복 받을 기회를 놓치고, 영생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은혜의 기회를 놓칩니까? 왜 구원받을 기회를 놓칩니까? 내 영혼에 아무 도움 되지 않는 썩어지고 불탈 것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월터>는 말하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실패하는 이유는 기회가 앞문에서 노크할 때, 네 잎 클로버를 찾을려고 뒷 뜰에 나가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일보러 나가면서 어린아들에게 병에다가 콩 볶은 것을 넣어주면서 <이것 먹고 잘 놀아라 엄마 잠시 가서 일보고 올게> 오후 늦게 엄마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대문밖에서 들어보니 어린 아들이 울고 있습니다. <콩 볶은 것 먹고 잘 놀아라고 했는데 울기는 왜 울어>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이 병 속에 든 손을 들고 울고 있습니다. <앗 뿔싸, 내가 잘못했구나.>
아이가 콩 볶은 것을 꺼내 먹으려고 병에 손을 넣기는 넣었는데, 콩을 한 움큼 쥐고 있으니 손이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손에 잡은 콩을 놓으면 되는데.
오늘 우리도 이 아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손에 잡은 것을 놓아버리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으면서 살 수 있는데, 그걸 놓지못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기회도 놓치고, 봉사와 헌신할 기회도 놓치고, 결국 영생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지난날 잘 나가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누구못지않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죽을 고생도 해보고, 좋은 집에도 살아보고, 수백 명 종업원도 거느려보고, 한 때는 돈을 세느라 밤이 새는 줄도 몰랐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돈도 집도, 사업도 바람 따라, 세월 따라 어디론지 다 날아가 버리고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족하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에 헌신하여 하늘에 쌓아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한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도 문 닫힐 때가 있었습니다.소돔고모라를 위해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마냥 인내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악으로 얼룩진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별 볼일 없는 것 붙잡고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에 유익되지 않는 것 미련없이 놓아버리고, 진리 안에서 자유하시고 예수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 없는 인생 파멸임을 알아야합니다.
술람미 여인이 신랑을 맞을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후회합니다. 그래서 깊은 밤에 성중 길거리로 나와 신랑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큰 낭패를 당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에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그러면 술람미가 왜 야경꾼들에게 옷을 벗기면서까지 낭패를 보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술람미를 밤손님을 찾아 나선 불나비로 오해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없이 나홀로 인생 행복할 수 있을까요? 솔로몬 없이 술람미 혼자 걷던 밤거리가 수취와 모욕과 낭패였듯이, 예수 없는 인생 절망이요 파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옛 믿음의 선진들은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하여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옛날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을 날라보신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갈 때 바가지를 엎어 놓으면 물이 출렁이지 않고, 쏟아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흔들리는 내 사업에 예수님 모시면 내 사업 출렁거리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부부사이, 출렁이는 인간관계속에도 예수님 모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입니까? 혹시 <살기도 괴롭군 죽으면 편하리 44번지>가 아닌가요?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의 현주소가 <은혜도 새롭군 받으면 기쁘리 777번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천국인줄 알아서, 주어진 삶의 형편이 좀 힘들고 괴로워도 우리주님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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