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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제2 강 정말 사랑한다면(아가서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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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039회 작성일 1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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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서로 사랑을 합니다. 한쪽이 자신이 가진 약점을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양심에 허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솔직히 고백을 했습니다. 고백을 들은 상대방은 그것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헤어지자고 말합니다.

이런 경우 양심에 따라 자기약점을 고백한 사람과, 그 고백을 받아드리지 않은 사람 중에서 누가 참된 사랑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자신의 약점을 고백한 사람, 그 사람의 사랑이 진짜사랑입니다. 반면에 고백을 받아드리지 못한 사람, 그 사람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참된 사랑은 1)허물이 눈에 보이면 지붕처럼 덮어줍니다. 2)허물이 있어도 건너뜁니다. 3)상대방의 허물을 감싸 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가서를 하나님의 사랑에 비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본문에도 술람미와 솔로몬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설교의 제목을 <정말 사랑한다면>이라고 정했습니다. 오늘도 술람미와 솔로몬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귀한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1.정말 사랑하면 있는 모습 그대로 내어놓고 받아드립니다.

본문 5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 같구나.> 여기 <게달의 장막>은 <검은 장막>이란 뜻입니다. 북 아라비아에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베드윈 족이 있습니다. 그들은 살인적인 뜨거운 광야에서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을 치고 살아갑니다.

술람미는 지금 자신의 피부가 너무 검어 게달의 장막 같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처녀로서 내어 놓기 힘든 자기약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술람미는 안 여인으로서 자신의 피부가 검은 약점을 지니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본문 6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럼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술람미는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어머니와 오빠들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빠들이 여동생 술람미로하여금 포도원을 지키게 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여기 술람미가 말하는 나의 포도원은 여인으로서 마땅히 가꾸어야할 자신의 외모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술람미는 시집갈 처녀로서 피부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술람미가 오빠의 포도원을 지킨 것은 인간관계 측면에서 보면 분명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시집갈 처녀 입장에서 보면, 결코 잘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2절에 보면 사도요한은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33절에는<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로마서 8:32절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이가 어찌 너희의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요한복음 15:7절에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모든 말씀들을 잘 살펴보세요. 먼저 네 영혼이 구원 얻기만 하면, 영혼의 집인 내 육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약속들입니다.

우리가 잠시뿐인 육신을 위한 세상일은 얼마나 열심히 합니까? 그러면서 영원한 생명인 내 영혼을 위한 일은 얼마나 등한시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6:27절에 보면,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목사와 사역자들만 주의 일을 하는 줄로 압니다. 장로나 직분자들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줄 생각합니다.

주의 일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요한복음 6:2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술람미는 자신의 약점만 내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적인 아름다움도 자랑하고 있습니다. <내가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솔로몬의 휘장 같다> 나는 비록 나의외모가 게달의 장막같이 검어 볼품은 없어도 여인으로 갖추어야할 내적인 성품은, 솔로몬의 별장에 꾸며놓은 화려한 휘장같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을 사랑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부족을 모릅니다. 언제나 나만 정직하고,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도, 남의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쉽게 판단하고, 쉽게 정죄하고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자기부족을 알고 겸손합니다. 반면에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은 자기 부족을 몰라 잘난 체 합니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자기 부족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찌 형제를 사랑하고, 어찌 은혜가운데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허물 많은 베드로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무리들이 돌로 치려했던 간음한 여인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약점도 탓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사랑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정말 사랑하면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본문 8절에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은 술람미와의 경쟁 상대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솔로몬을 향한 술람미의 진솔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을 받고 그만 경쟁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그녀들은 술람미의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인정했습니다. 시골뜨기 촌 여자라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여쁜 여인이라고 칭찬하면서 솔로몬을 만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 된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도와줄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 싱카포르 <래플스>병원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적이 있습니다. 이란 태생의 29살 난 샴쌍둥이가 52시간에 걸친 분리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수술이 실패로 끝나 둘 다 죽었습니다. 지켜본 많은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들 자매는 머리가 붙은 채 세상에 태어나서 29년 동안 같이 먹고, 같이 자고, 화장실에도 같이 가고, 함께 운전석에 앉아 같이 운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두 자매는 이란의 명문인 테헤란 법대에 나란히 합격했습니다. 한 사람은 변호사, 한 사람은 기자가 될 부푼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다투지 않았습니다. 서로 양보했습니다. 머리가 붙은 채로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만약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했을까요?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였습니다. 어떤 권사님댁에서 <라잔냐>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봤는데, 얼마나 맛이 있는지, 어디서 이런 걸 파는지 물었습니다. 아, 그것은 특별한 음식인데 어디서 파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여기저기서 특별한 재료를 사다 만들었다고 하면서 아무나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뒤 어느날 코스코에 가보니 버젓이 팔고 있지 않습니까? 코스코에서 판다고 가르쳐 주면 어디가 덧납니까? 이런 자세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예루살렘 여인들은 경쟁심을 버립니다. 술람미의 감추어진 가능성이 들어나게 도와줍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솔로몬을 만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

1)솔로몬을 만나기 위해서는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생명을 내어놓고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죽어간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2)<목자들의 장막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 무슨 말입니까? 술람미로 하여금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할일을 하면서 잠잠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내가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싶으면 아름다운 신앙의 발자취만 남기면 됩니다. 좀 부족하다 싶으면 믿음의 선배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돈은 잘 안 벌리지요, 하는 일은 힘들어 몸은 지쳐 피곤하지요, 그런 가운데 반찬 만들어와야지요, 부엌에서 찬양대에서 봉사해야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하나님 여러분의 힘든 것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수고 하늘의 상급으로 보상받을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주님 의지하고, 하늘의 소망으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의의 면류관 바라보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정말 사랑하면 상대방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본문 9-11절을 같이 보십시다.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당시 애굽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말의 산지였습니다. 솔로몬은 유난히 말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열왕기상 10:26절에 보면, 이스라엘에 마병이 12,000이요, 병거가 1,400대 있었는데, 솔로몬이 애굽에서 말들을 구입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바로의 병거의 준마>는 애굽 바로왕이 타는 말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의 눈에 술람미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으면 <바로왕의 준마와 같다>고 노래하고 있을까요?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구나.>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설교를 실감나게 하기 위해 한번 연습을 해보자 싶어서, 어제 밤 제가 제 아내에게 <당신은 바로왕의 준마와 같소.>하려다고 결국 못했습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하면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고 하던데>하면서, 어디 아픈 데가 없나? 하고 얼마나 걱정하겠습니까?

지금도 주님은 갈보리 언덕 십자가위에서 눈물젖은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사랑 변함없이 한결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무개야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우리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주님십자가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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