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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제10 강 예수,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아 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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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711회 작성일 13-05-1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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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교역자세미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각각 자기 집에 전화를 걸어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숙제를 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목사님들이 줄을 서서 자기 집에 전화를 걸어 <여보 사랑해> 하고 고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수화기에 키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경상도에서 올라온 나이든 목사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나는 못한다, 난 안한다>하면서 전화를 걸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같이 온 다른 목사님이 수화기를 빼앗아 그 목사님 집에 전화를 걸어 사모님을 바꿔주면서, 빨리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고 재촉했습니다. 마지못해 수화기를 받아든 그 목사님이 한참 뜸을 들이더니 <여보 내다, 사, 사, 사...찰 집사님은 잘 있나?>

오늘 본문에도 술람미와 솔로몬의 사랑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술람미를 찾아온 솔로몬이 밤이슬을 맞아가면서 술람미의 침실문을 뚜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신부인 술람미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신랑이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에야, 술람미가 통한의 눈물로 후회하는 장면을 지난주일 살펴봤습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을 찾아 성중 길거리로 나가 미친 듯이 헤매다가 얼마나 큰 곤욕을 치렀습니까? 야경꾼들로부터 창녀취급을 당하면서 수취를 당했습니다. 술람미가 신랑을 잘 맞이했으면 그런낭패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술람미가 잠시잠간의 시련을 통해서, 솔로몬이 자신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솔로몬을 찾아헤매던 술람미가 예루살렘여인들을 만나이렇게부탁합니다.<내 신랑 솔로몬을 만나거든 내가 너무 사랑해 병이 낫다고 전해주시오>

술람미가 어쩌다가 남편을 떠나보내는 우를 범했지만, 그래도 예루살렘 여인들로부터 아직 그 됨됨이는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9절에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아름답고 예쁜 여인이여> 어쩌면 솔로몬을 사이에 두고 경쟁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를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세상 사람들과 달리 힘들고 고달플 때, 우리의 무거운 짐을 맡길수 있고, 기댈 언덕이 있고, 기도할 대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혹시 나 한사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멸시를 당하는 것은 아닐까요? 복음전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나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가 욕을 듣지는 않는지? 자신의 삶의 모습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들입니다. 예수님의 증인된 삶은, 얼마나 예수님 닮은 삶을 사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 얻었으면 전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아래 살고 있다면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증인의 삶이 아닐까요?

어떤 집사님은 지난 두 주일에 걸쳐 과일을 가져와서 성도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구원의 징검다리 시간에는 옥수수 빵을 쪄오신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집사님은 손수 떡을 만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가정에 모여 함께 떡을 떼며 서로 사랑했습니다. 모두들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사모했습니다.

그들은 주의이름으로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증인의 삶의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따라서 교회는 가만히 않아 있는데도 부흥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길지 않은 인생길 살면서 불신자들로부터 욕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손꾸락질 받지 않도록, 주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은 술람미가 병이 날 지경에 이르기까지 솔로몬을 찾아 해매는 것을 보면서, 솔로몬이 다른 남자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9절에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이에 술람미는 솔로몬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온통 신랑솔로몬에 대한 자랑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을 사랑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도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 그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2.예수님은 너무나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공중의 새들 가운데 온유와 겸손을 상징하는 새는 비둘기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보면<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 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사람은 상대방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온유한지 겸손한지, 아니면 악한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술람미는 우유빛 같은 흰자위속에 아름답게 박힌 솔로몬의 두 눈에서 온유와 겸손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성품하면 우리는 먼저 온유와 겸손을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그분 예수님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와 같은 고독을 느끼실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때로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신 분이셨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만난 많은 병자들을 못 본체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내다보시고 한없이 울어야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주님의 인간적인 모습은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인류의 죄를 한몸에 짊어지고 죽어야 하셨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한 인간으로서의 심한 고통을 그대로 표출하셨습니다.

13절에 보면, 술람미가 솔로몬의 뺨을 보면서 감동에 젖습니다.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술람미의 눈에 비쳐진 솔로몬의 뺨은 향기로운 꽃밭과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향기로운 꽃밭이나 풀 언덕>은 우리 주님의 자상하신 마음 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꽃밭! 향기로운 풀언덕! 거기에는 참된평화가 있고,거기에 영원한 안식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얼굴을 보면 저 사람의 마음이 꽃밭인지, 가시밭인지, 그 사람의 마음이 벤댕이 속같이 좁은지, 아니면 바다같이 넓은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에서 베여나는 것입니다.

우리 옆 사람 얼굴한번 쳐다볼까요? 집사님, 권사님 얼굴은 향기로운 꽃밭 같습니다. 향기로운 풀 언덕 같습니다. 우리교회 남편 되시는 분들의 가슴이 아내에게 있어서 향기로운 꽃밭과 같고, 향기로운 풀밭과 같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를 위하여 참고 또 참으신 주님의 쓰라린 가슴을 이사야 50:6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 하였느니라> 그 주님의 심정이 이해가 되시나요?

주님은 <열 두영 더 되는 천군천사>를 동원할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뺨을 맞으면서 참았습니까? 왜 수염을 뽑고 침을 뱉는 로마 군병들을 왜 그냥 두었습니까?

죄로 멍든 심령인 저와 여러분을 감싸 안기 위한 넓은 가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그 넓은 가슴이 있었기에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고, 그 넓은 품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자상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눈에는 사랑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가슴에는 긍휼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입에는 위로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손에는 못박인 못자국이 있었고, 허리에는 창자국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그리고 너무나 자상하신 그분 주님의 이름,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예수님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구주로 믿는 믿음의 근거는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십자가 없는 믿음 있을 수 없고,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소망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내 인생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머리는 정금 같고> 금은 영원불변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머리는 몸을 콘트롤하는 몸의 주인입니다. 여기 <머리가 정금>이란 말은, 주님이 내 인생, 내 가정과 우리교회의 주인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 인생은 내 것> 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 인생 내 것이 아닙니다. 주님 것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는 인생입니다.

내 인생이 왜 주님 것입니까? 1)주님의 고귀한 피로 값주고 사셨기때문입니다. 2)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 1:18절에서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 인생을 가장 잘 아시고, 끝까지 책임져주실 주님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그분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 내 가정의 주인으로 모신 가운데,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예수님은 내 삶의 능력이 되십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삶이 더 고달파진다고 말합니다. 거기에다 악해져가는 세상에서 진리 편에 서서 살려고 하니 우리의 삶이 더 고난스럽습니다.

본문 14절에 <손은 항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이것은 주님께서 내 삶의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손을 말합니다.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손이 지금도 내 인생, 내 가정, 우리교회를 간섭하고 계심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기둥이 건물을 지탱해 주는 것이라면, 내 인생을 지탱해주는 기둥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물질과 권력, 그리고 내좁은지식과, 내잔꾀가 내인생, 내가정, 내사업을 받혀줄 기둥인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권력 때문에, 그 물질 때문에 오히려 함정에 빠져 깊은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주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방패, 내 인생의기둥, 내 삶의 능력되심을 깨달아, 그 분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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