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 강 하늘의 지혜와 성령충만(엡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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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16절에 보면,<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제자들을 죄악 세상에 내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인데, 죄악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지식은 다른 것입니다. 지혜는 단순히 어떤 지식의 축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을, 날마다 부닥쳐오는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시키는가, 하는 능력인데, 이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 지혜를 구했습니다. 죄악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도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야고보서 1:5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라>
1.때가 악하기 때문에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반드시 나름대로의 후회의 말을 하는데,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후회합니다. 1)그때 좀 더 참았을 걸, 2)그 누군가를 좀 더 사랑할 걸, 3)좀 더 베풀면서 살 걸, 왜 이런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일까요? 지혜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5,16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 때가 악하다는 말은 <타락하고 무가치하다>라는 뜻입니다. 또 촉박하고 긴박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때가 악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어려운 시대라는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 심판의 때가 가까웠다면, 아무렇게나 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몸에 이상이 생겼는데도, 생겼거나 말거나 가만히 있는 사람 있습니까? 자동차를 운전할 때, 앞에 트럭이 달려오는데도, 와서 들이박든지 말든지 가만히 있는 사람 있습니까? 갑자기 정신이 들면서 바짝 긴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세월을 아껴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잘 이용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기회입니까? 회개의 기회, 구제와 전도의 기회, 헌신하고 봉사하는 기회, 그 어떤 것으로도 핑계하지 말고, 그 일을 지금 빨리 하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멸망의 날, 심판의 날이 가까워 오고 있으니 신앙을 등지고 어리석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표어를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교회>라고 정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을 말하는 때는, 헬라어로 두 가지 단어가 있는데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입니다. 크로노스는 내 인생에 특별한 의미가 주어지지 않는, 그저 흘러가는 무의미한 시간을 말합니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계획하고, 섭리하시며 간섭하시는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껴야 하는 세월은 카이로스의 때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는 일들을 해야 할 시간들, 그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때를 분별하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는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낳을 때 하나님께 목회자로 서원했답니다. 제 어머니가 서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은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장로로 돈 많이 벌어 교회나 두어 개 지으면 되지, 왜 내가 목사 하느냐?고,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지낸 세월 10년, 20년은 저를 향하신 하나님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카이로스의 시간을 허비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하나님이 주신 카이로스의 시간을 크로노스로 의미 없이 낭비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전도해라, 구제의 삶을 살아라,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라, 그런데도 아니, 내 형편에 무슨 전도, 돈이 있어야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만약 그런 핑계하고 산다면, 여러분은 지금 카이로스의 시간을 크로노스로 허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카이로스의 시간을 허비하고 사는 것은 좋은데, 나중 주님께서 따질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해 살아야 합니다.
제가 젊은 나이에 장로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모처럼 포도를 사와서 포도주를 담았는데, 한 보름 지나서 열어보니 아주 잘 익었습니다.
마침 삼촌장로님이 저의 집에 오셨길래, 그 포도주를 떠다가 한잔씩 마셨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한잔, 또 한잔씩 더 마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안은 알콜 체질이 아닙니다. 삼촌장로와 조카장로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기분이 무척 좋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었더니 목사님이 지나가다가 우리 집에 잠시 들리신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는 성도들 술 마시고 담배피우는 것 가지고 탓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그런 낌새를 느끼면 살짝 피해줍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술을 금지하는 근거로, 오늘 본문 18절을 이용합니다.<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는 이 한 구절만 가지고 <술은 절대 안 된다.>고 잘라서 말하는 것은 성경적인 접근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디모데전서 5:23절에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술을 마셔도 된다는 근거로 이 구절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술 마시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도바울이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답을 주기 위해 이 구절을 기록했을까요? 아닙니다. 여기 <술 취하지 말라 이것은 방탕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술 자체보다는 방탕안 삶을 염려해서 한 말입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이 이 악한 세대를 살면서, 세월을 아껴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에 붙들려서 성령의 능력과 힘으로 살지 않으면 이 악한 세대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을 대비적으로 비유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셔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언젠가 TV 드라마를 보니까, 어떤 아가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 도저히 사랑한다는 고백을 못해 술을 마시고 술기운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봤습니다. 왜 술기운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까? 사랑의 힘으로 해야지,
옛날 부둣가에서 일하던 어떤 사람은 술만 한잔 하면 밀가루 포대 두 개 세개씩 번쩍번쩍 들어나르는데, 술을 마시지 않으면 밀가루 한포대도 들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포인트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에 취하면, 아무리 악한 세대라고 해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인답게 승리하며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19절 이하에 보면 세 가지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1)성령 충만하면 찬양의 삶을 살게 됩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을 보면, 제일먼저 방향감각을 잃어버립니다. 술에 취하면 술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술에 취하면 제정신을 잃고 술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술에 취하면 평소 아내에게 10불 주는 것도 벌벌떨던 남자가 이상한 여자에게는 수백불씩 주면서도 아까운줄 모릅니다.
반면에 성령충만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압니다. 돈도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알고, 나에게 주어진 카이로스의 시간을 허비하면 안된다는 것도 압니다.
술에 취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대체로 무엇입니까? 욕설과 더러운 말입니다. 반면에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와 찬미와 노래들이 끊이지 않고 나옵니다. 나도 모르게 찬양이 나옵니다.
2)성령 충만하면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감사는 성령충만의 조건임과 동시에 성령충만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내 입에서 불평불만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하면 주어진 삶의 형편여건과 상관없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됩니다.
본문 20절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범사와 항상이라는 단어입니다. 언제 어디서는 그 어떤 일이든지 감사하는 삶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이 가진 사람이 감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다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만난 사람, 그 주님으로 인해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행위입니다.
3)성령 충만하면 섬기며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이미 반항하는 삶의 스타일로 변해버렸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을 욕하고, 현직판사가 대통령을 모욕하는 글을 실고, 경찰 고위간부가 대통령에게 모멸감주는 문자를 보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이 겁을 먹고 학생들의 비유를 맞춥니다. 선생이 학생에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 다닙니다. 한국 말고도 그런 나라가 또 있을까요? 어쩌다가 우리 한국이 저렇게 되었을까요?
본문 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에 복종하라> 피차를 향한 복종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한명동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으로 한국교계에서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신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느 날 그분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큰 교회를 시무하다가 은퇴를 한 뒤, 100명 남짓한 조그만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남은 일평생 교인들의 신발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남을 섬기는 것, 얼마나 기쁜일인지 모르는데, 이것은 성령충만한 자만일 느낄 수 있는 기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믿음으로 살고, 지혜롭게 사는 것일까요? 내 시간을 포기하고, 내 생각도 포기하고, 하나님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 서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세월을 아끼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카이로스의 시간을 크로노스로 허비하지 말고, 성령의 술에 취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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