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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제16 강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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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18회 작성일 13-05-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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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길을 걷다가 땅바닥에 나뒹구는 낙엽 한 잎을 주었습니다. 너무나 곱게 물들어 책갈피를 하려고 집으로 가지고 오는데, 낙엽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낙엽을 주제로 쓴 시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 김시현씨의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낙엽은 미래에 대한 동경도 없고,
슬픔과 희열이 넘치는 감정도 없다.
그러나 세상을 터득한 철학이 있고 평화가 있다.
어디에 떨어진다 해도 불만이 없다.
바람이 불어오는 데로 따라가면 된다.
돌담 밑 그늘진 곳도 좋고,
양지 볕 그늘진 곳도 좋다.
어디인들 쉴 곳이 아니랴?
하늘하늘 춤추듯이 내려오는 낙엽에는
그냥 자연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한 닢 낙엽은 하늘하늘 아무데나 떨어져, 자연의 순리가 무엇인지,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동시에 한 닢 낙엽은,우리네 인생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취할 것이 무엇이며, 버릴 것은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오늘본문 30절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기보다는, 주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성령님을 늘 근심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어떻게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산다.>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할까요? 자신의 판단은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주님의 판단, 주님의 생각, 말씀의 기준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는 성경말씀은 안 믿어도 신문기사는 믿습니다. 목사의 말은 안 믿어도 박사의 말은 믿습니다. 성경보다는 컴퓨터를 내 인생의 길잡이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상징적인 존재로 내 인생의 수호자쯤으로 생각합니다.

고린도후서 3:17절에 보면,<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의 영이 내주하고 계시나요?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님이 계시나요? 여러분은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고 계시나요?

그러면 우리의 어떤 문제로 인해 성령님이 근심하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25-29절을 통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세가지 잘못된 삶의 행위, 즉 우리가 벗어던져버려야 할 옛 사람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1)거짓된 말과 행위이고, 2)분을 품는 것이고, 3)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살펴보면, 단순히 거짓된 삶을 살지 말라, 분내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고만 말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180도 완전히 변화되어진 삶인지, 변화되어져야 할 삶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거짓된 말과 행동이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그리고 29절에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거짓된 말과 행동은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또 다시 거짓된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안하겠다는 다짐 정도가 아닌, 180도 다른 삶의 행위가 나타나야하는데, 거짓된 삶이 참된 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삶으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손자가 할머니에게 <할머니 이빨이 흔들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한번만 만져 볼께>하고서는, 잇빨을 만지는 척하면서 확 잡아 당겨버렸습니다. 만지기만 하겠다고 말하고선 이빨을 사정없이 잡아 빼 버린 것은 어린손자에겐 거짓말 한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거짓말이냐?고, 그런 사소한 것을 거짓말이라고 하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우리교회에 치과의사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치과의사가 어른한테 <한번 만져만 봅시다.> 해놓고, 확 잡아빼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수당할지도 모릅니다.

할머니가 손으로 이빨을 뽑았느니, 치과에 안 가도 되고, 돈도 Save되고, 시간도 절약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얼마나 큰일을 했습니까? 그러나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야, 속았구나, 어른들은 순 거짓말쟁이야, 다음에는 조심해야지,> 그렇게 어른들에게 속으면서 자란 아이들에게 <정직해라>고 교훈하면 그 말이 먹여들까요?

우리는 흔히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짓말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거짓말을 하지 말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해가 지도록 분을 품는 것이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다.

<키스 코스 카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말입니다. <키스>는 입 맞추는 키스가 아닙니다. <돈주머니>를 의미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중요하지만, 그보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지난주간에 포항제철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박태준 회장이 죽었습니다. 이번에 알고 보니 자녀들에게 상속할 유산이 하나도 없답니다. 분명 돈 많이 벌었을텐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물론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는 군인으로, 기업인으로, 정치인으로 깨끗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국가장으로 할려고 하다가, 사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고,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을 했는데, 그만큼 남을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해서 벌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써, 나만 잘 먹고 잘살아야지, 그러면 주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 구원 얻은 내 생명이 귀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나이가 들어가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제 새벽기도 마친 뒤, 우리교회에서 두 번째 연세가 많으신 권사님이 마켙에 가서 호산나 찬양팀 젊은 분들에게 주려고 선물을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존경을 받습니다. 50세 이상 되신 분들만 따라합시다. 옆사람 보면서<집사님, 우리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엽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주머니는 열지 않으면서 입만 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돈 씀씀이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코스>는 올림픽마라톤 코스가 아니고 <술잔>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술 마시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느정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카스>는 박카스가 아니고 <분노>에 관한 말입니다. 자기마음의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인격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천하를 제패했다 하더라도 자기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승자가 아닌 패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6: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왜 분노하는 것일까요? <분노는 이기심과 자기 사랑이 침해받을 때 나타나는 비합리적, 비논리적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에다 2을 더하면 5가된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때 2 + 2 = 4이지, 왜 5냐고 분을 내면서 따지고 화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만만하면 상대방에 대해 분노하지 않습니다. 틀린 상대방에 대해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너그럽게 아량을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분노 그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악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상 분이 날 때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26절에서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말라> 해가지도록 분을 품고 있을 때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1)분을 내다보면 죄를 짓게 됩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살인사건의 60퍼센트가 분노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신문에 실린 사건사고를 잘 살펴보세요. 무슨 이권 때문에, 애인이 배신하니 화가 나서, 거의 대부분이 홧김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입니다.

2)분을 오래 품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타게 됩니다. 27절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기 틈은 원어로 <발붙일 기회>라는 뜻입니다. 화를 풀지 않으면 마귀가 발을 붙입니다. 그래서 분을 내더라도 해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2,3십년 전만 해도, 돈 버는데 유대인 따라 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유대인을 추월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얼마나 일찍 일어납니까? 얼마나 억척스럽습니까? 마약과 총의 위험도 한국사람들에게는 상관없습니다. 돈 되는 곳이면, 흑인동네든, 이라크 전쟁터에든 어디든 망설이지 않고 갑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을 가리켜 <Jew in Asia>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너 죽고 나 살자>고 하면서 덥빕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너 죽고 나죽자>고 합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얼마나 미련한 심사입니까?

잠언 22:24-25절에 보면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언 29:22절에서는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도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노하지 않아야 합니다.

3.남의 것을 탐내고 빼앗는 것이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다.

28절에 보면<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도둑질은 불의한 방법으로 이웃의 것을 탐내고 빼앗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탐내는 삶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선을 행하는 자세로 삶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제하는 사람이 도둑질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시면서 내 인생을 이끌어가십니다. 그런데 내가 자꾸만 육적인 생각으로 성도로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할 때 성령님이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들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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