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강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기도 1(엡 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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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숨쉬는 호흡과 같고, 하나님과 연결된 통로와 같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때그때마다 내가 하나님과 바른관계에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바른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선호하는 기도의 방법이 있습니다. 혼자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성기도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 <네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묵상기도도 좋은 방법이고,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셨으니 통성기도도 좋은 방법입니다.
기도원에서 통성기도하고 나오는 집사님께 물었습니다.<집사님은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셨습니까?> 정신없이 하다 보니, 내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간에 속이 시원하고 후련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내 속 시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참 어렵습니다. 교회의 임직식이나 행사의 순서를 부탁할 때, 대부분목사님들이 기도보다는 다른 순서를 맡겨주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기도가 뭐 어렵냐?>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실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겁 없이 당당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참된가치와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흔히 하나님 대신에 주님!하고 기도합니다. 주님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아마도 대부분이 주님이란 말이 예수님을 지칭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한다고 칩시다. 기도가 끝난 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고, 예수님 이름을 갖다 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기도한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도는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 될수 있도록 보장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란 말은 본래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나의 주님이시여! 하고 불렀습니다.왜냐하면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와서도 왜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예수님보다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뜻이 더 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하고 기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시편에는 기도와 찬송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을 통해 바른 기도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시편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다급한 문제를 두고 기도했습니다. 시편의 기도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여, 왜 나를 버려두십니까? 왜 저 악당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여, 용서하시고 나를 도와주옵소서.>하고 처음부터 자신의 처절한 심정을 쏱아 내 놓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조금 들면, 내 기도에 응답하실 분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어떤 능력의 소유자인지, 과거 선조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우리 조상들을 애굽에서 건져주셨고, 홍해를 건너게 해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셨고, 만나를 먹이시고, 여리고성을 무눠 뜨려 주신 분이 하나님 아니십니까? 하나님의 내 우편의 그늘 되신 줄 잘 압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자책하는 기도를 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꾸짖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이며, 내가 어떤 분에게 기도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어떤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 삶 속에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랜시간 기도한다고 기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큰 소리로 고함친다고 열납되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하면 나 혼자의 넋두리로 끝나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본문 17절을 같이 읽으십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여기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의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야다>이고, 헬라어로는<에피그노시스>입니다. 이 단어들은 우리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체험을 통해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누가복음 1:26절 이하에 보면, 어느 날 가브리엘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마리아가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남자를 알지 못하니> 무슨 뜻입니까? 남자와 관계를 가진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녀가 성관계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알듯이, 하나님도 체험을 통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기독교 신앙을 체험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언제어디서나 주님과 깊은 교제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신의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4절에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라>
사람들은 목사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합니다. 새로 온 교인들에 대해서도 깊이 알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깊이 알아야 할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박지성이나 추신수, 또는 유명 탤런트 이야기가 나오면, 복덕방 아저씨가 집 소개하듯이 줄줄줄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야기가 나오면 아는 것이 없습니다. 묵묵부답입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목사가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에 불만이 생긴다, 누구 꼴 보기 싫어서 교회를 안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은 열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애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건데,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상대방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식구가 몇인지, 장모님의 성격은 어떠신지, 처남의 직업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 모든 것이 궁금해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야 합니다. 요즘 디모데선교회 여성분들이 금요일 교회에 모여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자발적인 모임입니다. 왜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을까요? 본문 17절에 보시면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바울이 감옥 안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해 주옵소서> 여기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신다.> 무슨 말일까요?
지혜는 하늘의 지혜를 말하는데, 우리가 가진 성경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의 영은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님을 말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잘 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은 늘 편지 배달부이고, 산타글로스 할아버지시며, 어려운 문제의 해결사시고, 기도라는 전화 한통화만 하면 즉시 와서 도와주는 도우미>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하-짜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구약성경 호세아서 6:2,3절에 보면, 호세아선지가 이렇게 호소합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 서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리고는 호세아 6:6절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이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네 맘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되시기에,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인정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지도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복의 근원이시고, 우리를 자녀삼아주신,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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