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강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2(엡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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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도계속해서 지난주일과 같은 본문, 같은 제목으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3-6절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관한 말씀으로, 상당히 긴 내용인데 전체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이 어떻게 시작되고 있습니까? 3절 초두에 <찬송하리로다.> 그리고 6절 마지막에 어떻게 끝을 맺습니까?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찬송과 찬송 사이에 하늘의 신령한 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왜 신령한 복이 찬송과 찬송 사이에 들어 있을까요? 우리가 받은 하늘의 신령한 복은, 우리가 찬송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놀라운 복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창세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주시고, 자기 아들삼아주신 것, 범죄한 인간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성부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성자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셨고, 성령님이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시고 인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었다. 이 은혜를 생각만 해도, 우리가 찬양하고 또 찬양해야 할 일 아닐까요?
1.우리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 되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예수를 믿으므로 그렇게 됩니다.>라고 쉽게 대답합니다. 물론 정답입니다. 그러나 진짜 정답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요? 우리의 믿음이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부하나님께서 구원을 계획하지 않으시고,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으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장 강조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1)그가, 그의 라는 단어이고, 2)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단어입니다. 본문 3절부터 14절까지에는하나님을 지칭하는 <그가, 그의, 자기의>등의 단어는 무려 11번 나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이란 말도 11번 나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1)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2)그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놓아버리면 그 밖에서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신다면, 그런 교회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놓아버리는 순간, 목사는 사기꾼이 되고, 교회는 세상사람들이 모인 게 모임보다 못한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주권적인 섭리로 영원한 목적지 하늘나라로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자기 종으로 써 먹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밤낮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왜 내가 하라고 한 것은 안했나요? 왜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습니까? 금식을 하오리까? 철야를 하오리까?
누가 주인이고,누가 종인지 모릅니다. 그 이유는 1)예수그리스도 안에서>를 놓쳤기 때문이고, 2)복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제일 많이 하는 기도가 뭡니까?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이것저것 달라는 기도 아닙니까? 사실 우리가 달라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이것저것 달라는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이 많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다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모든>은 영어로 all이 아닌 every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필요한 이것저것 모든 것들을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까? 제가 이렇게 질문하면 여러분은 NO,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모든 것을 다 주셨다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능력 어디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문제 해결 어디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 어디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져다 쓰고 못쓰고는 내 믿음에 달렸고, 우리가 정말 예수 잘 믿고 살면, 진짜 예수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면 이미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믿어지시면 -아멘-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이 이것 달라 저것 달라고 기도하지요. 진짜 믿음 좋은 사람은 이것달라, 저것달라,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버지 내 형편 아시지요? 이 한마디 하면 OK, 왜요? 내 믿음 안에 예수님계시고, 예수님 안에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어지시면 다시 한번 더 -아멘-
그래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너희가 모든 것을 다 받았으니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밤낮 모자란다고 하소연합니다. 달라고 기도하다 못해, 심지어 내어놓으라고 하나님을 협박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화와가 선악과를 바라보는 순간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도 한 나무인지라> 그런 느낌을 받은 시점이 언제입니까? 마귀인 뱀의 꾀임을 받은 뒤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마귀생각에 사로잡히면 세상 것이 화려해 보이게됩니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히면 세상이 시시해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상이 시시해 보이나요? 아니면 세상이 화려해보입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명품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명품에 눈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화려하고 무궁한>
베드로전서 2: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와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 말씀은 누가 신자인가? 하는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자는 나그네요 행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거류민과 나그네는 본향이 있고, 최종 목적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시민권자가 아닌,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나그네로 내세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나그네로 잠시 지나가는 것이지, 영원한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해있고,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을 상속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나그네로 사는 사람은 부족한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감사하고,
모세는 장성해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를 비롯한 믿음의 위인들, 그들이 세상 것에 미련두지 않고 생명도 불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16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한국교회가 한 가지 잘 못 가르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생활 잘하면 지금 당장 상 받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믿는다면, 그것은 현세적인 삶의 목적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저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은 우리의 본거지가 아닙니다. 흑암의 권세잡은 자들이 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감히 예수님마저도 넘어뜨리려고 했던 현장이 이 세상 아닙니까? 사실 우리는 악한 세력에 의해 포위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협박 공갈, 유혹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혼자입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과 만나게 됩니다. 신자라는 옷을 입고 나가면, 왼쪽은 사기꾼이고, 오른 쪽은 악당이고,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이리떼, 그리고 위에는 독수리, 아래는 독사가 우굴거립니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신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이기 때문에 세상 것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돈도, 건강도, 명예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습니다. 손에 잡은 것은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은 뭐든지 양보합니다.
우리는 손에 잡고 있어도 세상 것이라면 쉽게 놓아버립니다. 왜요? 내 손에 잡고 있는 세상 것을 놓아버리는 날, 드디어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길 걸어가는 동안 많은 고난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자녀 삼으셨으면, 쉽고 편한 길로 가도록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왜 고난스런 길로 인도하시고, 왜 고통스런 문제앞에 서게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구원 얻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깊어져야 하고, 높아지고 넓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훈련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나갈 때 보다는, 고난스런 문제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욥의 경우를 보면, 있는 것 다 가져간 뒤 욥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히스기야의 경우도 죽을병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어느 정도인지 달아봅니다. 지난날 제 경우도 사업 실패해 힘들고 어려울 때 달아보셨습니다.
훗날 하나님은 욥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욥기 42:10절에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더라.> 히스기야의 경우도<내가 네 눈물을 보았노라> 히스기야의 눈물 속에 담겨진 믿음의 보고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그 복은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예수그리스도 안에 그 복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그 모든 복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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