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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제1 강 은혜와 평강(엡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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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545회 작성일 13-05-1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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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부터 주일 예배시에 에베소서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에베소서는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때,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에베소서는 여섯 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서신서입니다. 그러나 교회 관을 비롯해서 놀라운 구원의 진리가 담겨져 있는 복음의 진수입니다.

아미테이지 로빈슨은 에베소서를 가리켜 <사도바울이 쓴 13권의 서신중의 왕관>이라고 극찬했고, 성경주석가인 바클레이는 <서신들의 여왕>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프린스턴 신학교 총장이었던 멕케이는 에베소서를 연구한 뒤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에베소서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에베소서를 통해 죽은 존재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내 삶의 중심이 되셨다.>

에베소는 오늘날의 많은 도시들처럼 하나님의 질서가 파괴된 도시였습니다. 매춘을 비롯한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도적들이 기승을 부리고, 곳곳에서 강도 살인이 자행되는 죄악의 온상과도 같은 도시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당시 로마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안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예수 안에서 화해를 이루는 아름다운 교회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를 교회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에베소교회 교인들을 향한 사도바울의 편지가 이렇게 시작됩니다.<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바울이 에베소교회 교인들을 가리켜 성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캐톨릭에서는 성도를 Saint,성자라고 해서,죽은 신자들 중에서 위대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란 말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무리라는 뜻으로, 신약성경은 모든 믿는 자를 가리켜 성도 또는 신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저나 여러분이 세상적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보시지 않습니다. 의로운 사람, 귀하고 거룩한 무리들로 보십니다. 왜요? 그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 얻은 하나님의 자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믿어지시면 우리 모두 아멘합시다.

본문 2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인사가 나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러면 왜 바울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인사하는 것일까요?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귀하고, 가장 복된 것이 은혜와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1.은혜와 평강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평강이란 말은 평화나 평안과 같은 뜻입니다. 평화란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큰 걱정거리 없이 그저 마음이 편안한 정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래 문자적으로 평화는 전쟁이 그친 것, 공포나 위험이 사라진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평화는, 전쟁이 끝난 정도가 아닌, 마주서서 손을 잡는 것, 더 나아가서 원수관계에 있던 서로가 부둥켜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원수가 누굽니까? 누가 우리의 원수입니까? 마귀사단이지요? 그러나마귀사단은 우리가 예수 믿고 난 이후에 원수된 것이고요, 예수 믿기 이전 마귀사단의 종으로 살 때, 하나님의 원수는 누구였습니까? 우리였습니다.

마태복음 10:34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정말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로 온 줄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왔다. 그리고 식구들과 화목하게 해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불화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누구와 불화했습니까? 세상과 불화했습니까? 아닙니다. 세상과는 평화였습니다. 하나님과 불화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와 불화합니까? 죄악세상과의 불화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세상과 연합하지 않으려고 해서 생기는 불화입니다. 예수 잘 믿으려고 하는 만큼, 세상과는 불화하게 되고, 반면에 하나님과는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본문에서 말하는 평강은 누구와의 화평을 말합니까?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원수관계에 있던 하나님, 불화관계에 있던 하나님과 화평을 해야 하는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은혜인데, 이 은혜는, 누군가 우리대신 죽어주어야 합니다. 용서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로마서 5:1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일어난 가장 놀라운 두 가지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은혜의 사건입니다. 2)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은혜가 먼저이고, 평강이 나중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평강은 아무나 누릴 수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과거에는 하나님과 불화했던 우리가, 감히 하나님 앞에 바로 설수 없었던 우리가,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오늘 이자리에 앉아있게 된, 이것이야 말로 전적 주님의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누리게 된 평강, 잠시 기분이 좋아서 평화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하루 장사 잘 것 때문에 누리는 기쁨정도가 아닙니다. 죽음을 앞둔 상황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 인생길에서 당하는 고통 속에서도 누리는 평안,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자라야 누릴 수 있는 평강입니다.

은혜란 말의 문자적인 본래의 뜻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를 말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8절에 보면, 은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오늘날 사람들은 은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내 비즈니스가 잘되고, 내 자녀가 출세하고, 계획하는 것들이 이루어질 때,그것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얻은 성도들에게 덤으로 오는 것이지, 본질적인 은혜의 핵심은 아닙니다. 은혜의 본질은 죄인인 인간이 범죄 하기 이전처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 짓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된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관계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것,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나의구주로 믿고 구원 얻게 된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운데 요한복음 3:16절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요한복음 3:16절은 우리가 다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3:16절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중요한 구절인 17절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보내셔서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함이라.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으로 구원했습니까?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으로 구원했습니까? 아닙니다. 이 부분을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은, 우리 대신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인 그 은혜를 믿는 것이지, 엄밀히 따져 우리의 믿음이 나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아들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이신, 그것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2.은혜와 평강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요즘 중앙일보에, 영화배우 신성일씨의 회고록이 게재되고 있습니다. 젊을 때 인물이 얼마나 핸썸 했습니까? 얼마나 잘 나갔습니까? 손에 잡히는 것이 돈다발이고, 발에 차이는 것이 여자들이고, 입에 들어가는 모두 산해진미였습니다.

그런데 몇 십 년 세월 지나고 나니까, 천하의 신성일씨도 머리는 백발이 되고, 여기저기 쭈글쭈글 주름살로 뒤덮여있는데, 그게 뭐 잘난 얼굴입니까?

영화판에서 누가 불러주기를 합니까? 아내와 별거하고 산속에 들어가서 통나무로 집지어놓고 혼자 밥해 먹으면서 살고 있는데, 그게 사람 사는 행복일까요? 어쩌면 저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세상이 주는 행복의 한계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도, 이 남자 품에 안기면 행복이 있을까? 저 남자 품에 안기면 마음이 평안할까? 무려 여섯 남자들 품에 안겨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그녀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목마른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지 않았습니까?

노아시대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 가장 복되고 영광스럽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완벽한 구원의 자리가 어디였습니까? 노아의 방주 안이었습니다.

본문 1절과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된 바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이런 말들의 공통분모가 무엇입니까? <In Christ, 예수 안에서> 바울이 사도된 것, 우리가 구원얻은 것, 가진 것은 없어도 기쁨을 누리고 평화를 누리는 것, 이 모두 In Christ,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 안에서 누리는 은혜는 내 영혼의 구원 뿐 아니라, 요한삼서 1:2절에 기록된대로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는> 축복을 받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내 모든 부족이 채워지는 축복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내 모든 부족을 누가 내워줄 수 있습니까? 친구가 아닙니다. 부모형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밖에서의 평강, 예수 밖에서의 출세, 예수 밖에서의 좋은 집, 예수 밖에서의 좋은 자동차, 예수 밖에서의 축복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In Christ>주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참된 것인 줄 믿고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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