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5강 06/13/07 에덴동산과 두 나무(창 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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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인류최초로 인간의 거주지였던 에덴동산이 나옵니다. 에덴동산에는 각종 과일나무뿐 아니라, 생명과와 선악과, 두 나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에덴동산이 과연 이 지구상에 존재했을까?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은 지금의 어느 지역일까? 왜, 하나님께서 동산중앙에 선악과와 생명과 나무를 두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8-9절에“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과거에는 에덴동산을 하나의 전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자들도 지구상에 에덴동산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2:10절 이하에 보시면, 비손강과 기혼강, 그리고 힛데겔강과 유브라데 등 네 개의 강이 있었는데 에덴동산에서부터 흘러내렸습니다.
그 네 개의 강중에서 비손강과 기혼강은 노아홍수로 인해 지금은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힛데겔 강은 오늘날의 티그리스강이고, 유브라데 강은 유프라데스 강으로 지금도 이라크지역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또 본문 12절에 보시면, 정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 같은 보석이 있었습니다. 티그리스나 유브라데스 강 주변에는 지금도 베델리엄과 호마노 같은 보석이 많이 생산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매장된 곳은 중동지역입니다. 왜 중동지역에 석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는 것일까요? 석유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죽어 매장된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많은 사람과 짐승들이 노아홍수 때 모두 매장되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이 있던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지역에 석유가 많이 매장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스 강이 흐르고 있는 지금의 이라크지역에 에덴동산이 존재했음을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1.에덴동산은 우리의 영원한 거주지인 천국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자기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뒤에,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화와가 거주지인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에덴의 뜻은‘즐거움, 기쁨 쾌락’이라는 뜻으로,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낙원이었기에‘파라다이스’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낙원이란 말은 여러군데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23:43에 보시면, 예수님은 회개한 한편 강도에게“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12:2-4에서 자신의 영혼이 잠시 다녀온 하늘나라를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요한계시록 2:7에서 이 세상이 다 끝난 뒤에 구원 얻은 성도들이 들어가게 될 영원한 천국을 가리켜서 낙원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흘러내리는 네 개의 강물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맑고 깨끗한 강물에는 각종 물고기가 헤엄치고, 강 좌우에는 풍성한 나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계시록 22:1-5절에 보시면,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에도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데, 그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해서 수정같이 맑은 물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의 열매들이 있었습니다. 장차 우리가 가게 될 천국에도 아름다운 열매들이 있습니다. 계시록 2:7절에“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시록 22:2절에도“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거주지 때문에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고민하고 좌절하고, 절망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거주지는 영원한 거주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거주지가 될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에덴동산의 두 나무는 우리가 선택해야할 구원과 저주의 길을 가르쳐줍니다.
본문 9절에“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생명과와 선악과가 어떤 과일나무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나무는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과 화와는 생명나무를 향하여 나갈 수도 있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향해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66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의 두 가지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거나, 하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할 때, 그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길이 됩니다. 반면에 하라는 것은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않으면서 순종할 때, 그 것은 생명을 선택하는 길이됩니다.
성경에는 인간에게 생명과 사망, 그리고 축복과 저주의 선택을 요구하는 말씀이 여러곳에 있습니다. 신명기 30:19절에“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따라서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의 선택을 요구하는 성경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저녁에 두 젊은이가 타락하기로 작정하고 도박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박장 바로 옆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도박장으로 들어가던 두 청년 중 한 청년이 교회 입구 간판에 써있는 그날 설교제목을 보았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불현듯 그 젊은이의 마음속에 죄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도박장에 들어가지 말고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결심한대로 가야지 무슨 소리야”하면서 도박장으로 들어가고, 한 친구는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한 그 청년은 그날 밤에 선포된 말씀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어느듯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은 그 청년은 미국의 제 22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클리브랜드 대통령입니다.
30년 전 교회가자는 친구의 제의를 뿌리치고, 도박장을 선택했던 그 친구는 감옥에서 친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한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십여 년 전에“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어떤 냉장고 회사의 광고가 히트 친 적이 있었습니다. 냉장고를 살 때는 정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를 믿고 안 믿고의 선택은 얼마나 좌우하게 될까요? 10년이 아닌 영원을 좌우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도로에 노란차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노란차선을 넘어가고 안 넘어가는 것은 내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노란선을 넘어가면 사고가 나서 다칠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벌금을 내야한다”는 조건이 달린 자유입니다.
생명과든 선악과든, 두 나무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 또한 절대적인 자유가 아닙니다.“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네가 죽으리라” 먹고 안 먹고는 내 자유지만, 그 자유는“먹든지 안 먹든지 네 맘대로 해라 그러나 먹으면 죽는다”는 조건이 달린 제한된 자유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화는 자유만 생각했지, 그 자유속에 붙혀진 조건을 무서워하지 않아 금지된 선악과를 향해 나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후손들인 모든 인류로 하여금 죄 가운데 빠져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예수 믿고 안 믿는 것 내 자유입니다. 교회오고 안 오는 것, 성경읽고 안 읽는 것, 십일조를 하고 안 하는 것도 내 자유입니다. 공동체 40일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고 안하는 것도 내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구원과 멸망이 전제된 조건적 자유입니다. 축복과 저주가 담보된 자유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도 아담과 하화에게 선택을 요구하시던, 에덴동산의 두 나무가 언제나 불쑥불쑥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따라갈 것인가? 사단마귀를 따라갈 것인가? 주일을 지킬 것인가? 지키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내가 하는 이 일이, 생명과를 향하여 가는 길인지? 선악과를 향하여 가는 길인지?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범죄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준비된 제 3의 나무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두 나무 중에 선악과를 향해 나아갔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뒤에 그룹들과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 길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생명나무길로 나아가지 않는이상 살길이 없습니다. 죄가운데서 영원히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 보시면,이 생명나무의 길이 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정같이 맑은 길, 생명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의 열매가 있고,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회복된 에덴동산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또 다른 생명나무를 준비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수르광야를 헤매다가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물이 써서 마실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은 시간이 문제지 꼼짝없이 모두 목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광야사막에서 살길이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나무를 지시하시면서 그 나무를 마라의 쓴물에 던지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가 그 나무를 던졌더니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라의 쓴물은 죄악된 세상, 저주받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쓴물을 단물로 치료한 그 나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갈보리 언덕위에 세워진 십자가의 나무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 얻을 수 있도록 제 3의 한 나무를 준비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4절에 보시면 그 나무가 무엇인지 기록하고 있습니다.“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라” 제 3의 나무는 십자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때문에 낙원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라는 제 3의 나무를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갈보리 언덕위에 세워진 십자가라는 그 나무를 붙들기만 하면, 생명의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새롭게 회복된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모두 제 3의 나무인 주님십자가를 붙잡고 힘 있게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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