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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제15 강 옛 사람과 새 사람(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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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543회 작성일 13-05-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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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선이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총으로 싸 죽인 공산당원이었던 안재선의 아들입니다. 여순반란사건이 진합된 뒤 안재선은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두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를 죽인 원수 안재선이 사형에 처해지기 바로직전에, 당국에 간청을 해서 그 원수를 살려 자기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손목사님의 양아들이 된안재선은 손 목사님의 권유로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들, 어느 누가 살인자가 전하는 복음을 전해 듣고 싶어 할까?> 따가운 시선을 벗어나지 못해 그만 신학을 포기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48세에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안재선씨도 48세에 후두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안재선씨는 임종직전에, 고등학고 3학년인 아들 안경선을 불러놓고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때만 해도 안경선은 자기아버지가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인줄 몰랐습니다. 나중에 신학교에 들어간 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동안 그는 <손양원 목사와 살인자 아버지 안재선>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하다가 결국 신학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다시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어, 강원도 등지에서 20여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믿기 전과 다른 변화된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변화된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본문을 중심으로 <옛 사람과 새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요즘 우리는 개혁(개혁)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습니다. 개혁이란 <새롭게 고친다>는 뜻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2,3년 동안은 <금융개혁, 의료개혁, 언론개혁, 정치개혁> 등등, 개혁이라는 말이 구호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제대로 개혁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보니, 단어를 잘못 사용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개혁은 <고칠 改, 가죽革>입니다. 가죽을 고친다, 속마음을 고쳐야 하는데, 껍데기만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혁이라는 말 대신에 <改心>이라고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2절에 보면<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옛 사람,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옛 사람을 세가지로 묘사하고있습니다. 첫째)17절에, 마음이 허망한 사람, 둘째)18절에, 총명이 어두운 사람, 셋째)18절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1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하지 말라>

여기 허망은 본래 그 뜻이 <결과가 없는 헛된 것>을 말합니다. 분명 잡은 것 같았는데 손에 잡힌 것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마지막 인생 종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허망입니다.

예수그리스도 밖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인생말년에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런데 사람들은 헛되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영원한 줄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헛된 것에 목을 매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인생 종칠 그때에야 헛된 줄 깨닫습니다.

옛사람의 특성 중 또 하나는, 총명이 어두워진 사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총명은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에 어두운 사람,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워진 사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유대인 최고의 지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는커녕 하나님나라를 보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니고데모가 뭐라고 반문했습니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어머니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인간적으로 총명했지만 영적으로는 무지했습니다.

세 번째 옛사람의 특성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본문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는 말은 한마디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죽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여기 굳어졌다는 것은 본래 그 뜻이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한아운>이라는 나환자시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문둥이의 슬픔과 분노를 주제로 쓴 시가 있습니다. <북간도 땅을 걸어갑니다. 보리가 피는 밭고랑에 앉아 다리쉼을 합니다. 땀에 절은 양말을 벗습니다. 탈탈 털어내니 잘리운 발가락 하나가 툭 털려나옵니다. 땅바닥에 나뒹구는 발가락을 보면서 남아 있는 발가락 형제를 만지작 거립니다. 언제 또 잘려 나갈지 모를 형제들입니다. 발가락이 잘려나가도 아픔을 모르는 문둥이입니다.>

저는 시신을 많이 봤습니다. 시체를 보면서 느낀 것이 많습니다. 그 당당했던 사람도 죽으면 꼼짝 못하는구나, 죽으면 먹지도 못하는구나, 그렇게 욕 잘 하던 사람도 죽으면 욕도 못하는구나. 슬픈 일이 있어도 시체는 울지 않는구나.웃겨도 웃지 않는구나.

이와 같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령의 역사임에도 반응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고서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오늘 날 우리 주위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 그렀습니다. 왜요? 마음이 굳어져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목적대로 살지 않습니다. 쾌락적인 삶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이 시대 사람들이 바로 이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러운 욕심이 목구멍에까지 차 있으면서도 감각이 없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습니다. 시대의 긴박성을 모릅니다. 소돔고모라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고대 헬라나 로마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이런 옛 사람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칼 칠치라는 유명한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면, 밤에 자다가 눈을 번쩍 뜨는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 그게 바로 그 사람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잠을 자가가 눈을 번쩍 뜨면서, <주님>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 사람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고, 잠을 자다가 일어나 눈을 뻔쩍 뜨는 순간, <돈> 그러면 돈에 목매고 사는 사람이고, 눈을 뜨는 순간, <미스 김>하면 미스 김에 홀딱 반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번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새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한마디로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본래 사람은 Image of God,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24절에 보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의와 진리와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품들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고, 진리되시며, 거룩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시민 답게 사는 사람이 새 사람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은 자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형벌입니다. 그러나 생각마저 가둘 수는 없습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마음이 감옥에 갇힌 사람, 생각이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 많습니다.

미움과 증오, 음란과 탐심 등 악한 영들의 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마귀의 생각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예수님의 생각도 들어왔다 나갔다 합니다. 왜 마귀의 생각이 들어오도록 용납하는 것입니까?

음식은 그렇게 먹지 않을 것입니다. 내 집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몸보다 더 중요하고, 집보다 더 귀한 성령의 집인 내 마음은 왜 아무렇게 내버려두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바울을 통해 이렇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본문 20절을 새 번역으로 보겠습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21절에는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그분 안에 있는 진리대로 가르침을 받았다면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예수 믿고서도, 예수 믿기 전, 옛 사람의 행실을 그대로 하고 살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구원 얻은 성도들로, 하늘나라 백성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새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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