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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제12 강 주안에서 하나 된 우리(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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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262회 작성일 13-05-14 20:06

본문

에베소서는 모두 6장인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까지 살펴본 1-3장까지는 구원교리에 관한 말씀이고, 오늘부터 살펴볼 4-6장까지는 구원 얻은 성도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실천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우연히 모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였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고, 부름을 받은 우리에게는 감당해야 할 마땅한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입장에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고, 또 저와 여러분을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하나 되게 해주신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을 잘 보시면, <너희가 하나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 되게 한 것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불러주셨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세상사람 다 제쳐두고 저와 여러분을 불러, 하나님과 우리 모두가 하나 되게 해주셨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1.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7: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영접한 그 순간 이미 주님과 하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주님의 몸에 붙은 지체들로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제가 아침에 40분 정도 걷습니다. 아침 7시 10분이 되면, 어김없이 저같이 경상도 사람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광경이 벌어집니다.

하얀 백인으로 나이가 60정도 되어 보이는데, 아마도 남편이 조기 리타이어를 하고, 부인은 아직 직장에 나가는 것 같습니다. 부인이 차를 타고 출근을 할 때면, 이 아저씨가 이상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흔들면서 차를 따라갑니다. 하 - 100미터 정도 따라가면서 부인을 배웅하고 돌아옵니다. ------

베드로전서 3:7절에 보면, 부부는 생명의 유업을 함께 나눌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기업을 함께 누린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부부가 하나 되고, 가정이 하나 되고, 교회가 하나 되고, 사회가 하나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사랑 사랑 부르짖으면서 만난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합니다.혈연관계인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하나 되지 못합니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피로 하나 된 성도들도 하나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정말 비극입니다.

실컷 부부싸움 하고, 혼자 교회에 가서 복달라고 기도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부부가 한마음 되지 않는데, 기도한다고 복을 줍니까? 열심히 노력한다고 복을 받나요? 아닙니다. 이렇게 두 손이 모이듯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한마음으로 일하고, 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길 때 복을 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가왜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까?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습니까?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세상이 우리의 복음증거를 신뢰하겠습니까?

본문 4절과 5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에서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2)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마크트레인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이런 조크를 한 적이 있습니다.<개와 고양이를 한 우리에 집어넣었더니 잘 어울려 놀았다. 새와 돼지와 염소를 한 우리에 넣었더니, 얼마 후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 이번에는 침례교인과 장로교인 그리고 천주교인을 한 우리에 집어넣어보았다. 그들은 즉시 싸우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격렬히 싸웠다>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그래도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교회는 개척 멤버가 없이 시작한 교회입니다. 침례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순복음교회, 캐톨릭에서 신앙생활하던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오늘까지 왔습니다. 사실 얼마나 다양한 교파에서 모였습니까? 그런데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본문 4절에 <몸이 하나이요> 여기서 몸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2:2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의 몸은 하나지만, 여러 지체들이 한 몸에 붙어있습니다. 우리 몸에 붙은 지체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 하나도 없습니다. 속눈섭이 없으면 괜찮을까요? 발은요, 귀는요? 모든 지체들이 머리를 중심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몸인 우리교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분은 금요일마다 마켙에 나가 전도지를 돌립니다. 매일 아침 교회에 나와서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힘에 넘치게 헌금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찬양하는 일에, 친교실 봉사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한 사람,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모아주셨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심으로, 그 흘리신 보혈로 우리가 하나 되게 해주신 것을 힘써 지키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어떻게 해야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킬 수 있을까요?

본문 2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 되는데 필요한 4가지 신앙의 덕목이 나옵니다.<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1)서로 겸손할 때 하나될 수 있습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가 겸손입니다. 내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교만해집니다.

요한삼서 9절에 보면, 사도요한이 어떤 한 사람을 찍어서 그 사람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 하면, <디오드레베>입니다. 왜 그 사람을 책망하는 것입니까?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 오늘날에도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 많습니다. 공동체에서 자꾸 자기만 높이고, 자기주장만 하면 공동체는 어려워집니다. 어떤 사람이 겸손한 자입니까? 자기위치에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입니다.

2)모두가 온유해야 하나될 수 있습니다.

온유라고 할 때, 우리는 힘이 없고 나약한 사람을 연상합니다. 그리고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비리비리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유란 단어의 본래 뜻은 <잘 통제되고 절제되고 있는 힘>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온유는 약자의 비굴함이 아닙니다. 온유는 강자의 부드러움입니다. 자기 힘을 잘 통제해서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민수기 1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가리켜 <이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사실 모세는 그렇게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애굽바로왕의 공주의 아들로 있을 때는, 혈기가 있었고, 자신을 정의의 사도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사람을 쳐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온유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옛날 한국에서 다방에 가면 아가씨들이 매상올리기 위해 옆자리에 앉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옆에는 앉지를 않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은, 왜 나 옆에는 앉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제가 형사처럼 너무 날카로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옛날 저는 실제 아주 날카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나만 잘났고, 나만 정직한 줄 알았습니다. 온유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얼마나 부드러운 남자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은혜를 받고나면, 모세처럼 온유한 사람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3)서로가 오래 참을 때 하나될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의 본을 보여주신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만약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지 않으시고,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징계하신다면 우리중에 살아남을 사람 누가 있습니까? 이땅에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 아무도 없을 것이고,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없으셨다면 이 당에 기독교도 존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게셋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계실 때, 무리들이 검과 몽둥이를 들고 예수님을 체포하러왔습니다. 그때 성질급한 베드로가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베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나요? 베드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했습니까? 아닙니다.

땅에 떨어진 귀를 주어서 도로 제자리에 붙여주고 낫게 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2:51절에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오래 참는 것, 오래 참을 때 하나 되고, 오래 참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4)서로 용납해야 하나될 수 있습니다.

용납의 본도, 역시 예수님에게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한 동족들을 용납하시고, 의심많은 도마와 배신자였던 베드로까지 용납하셨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주님의 속을 얼마나 썩이면서 살아왔습니까? 심심하면 주님 배신하고, 걸핏하면 주님 원망하고, 뭔가 되겠다 싶으면 주님 실망시키고, 그런 우리를 용납해주시는 하나님, 얼마나 감사합니까?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한 가정에 어려움이 있다, 교회에 어려움이 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누군가가 겸손하지 못했고, 누군가가 온유하지 못했고, 누군가가 오래참지 못했고,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 모두를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주님의 그 사랑,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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