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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제9 강 십자가로 이룬 교회공동체(엡 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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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434회 작성일 1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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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는 지난 주일오후에 교회설립 12주년 기념감사예배 및 13분의 임직식을 거행했습니다. 많은 손님들이 와서 교회설립이후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행사를 위해 수고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문짝을 페인트 하는가 하면, 꽃 장식을 하고, 같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많은 분들이 수고하셨습니다. 꽃다발이 몇 개 안될 줄 알고 순서에 넣었더니 어떻게 꽃다발이 많은지, 붕어빵도 인기가 좋았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풍성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사랑과 평화가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줄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참새와 제비도 제단처마 밑에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피난처요 안식처가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의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천국의 모형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세워진 곳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주님께서 달려죽으신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는 곳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교회를 통해 천국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왜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일까요? 그러므로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1절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게 된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우리의 형편이 어떠했는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당연하지요? <선민이스라엘나라밖의 이방인이었다.> 당연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이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13절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잇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계속 19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1.십자가의 은혜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 남자들은 세 가지를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1)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했고, 2)종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고, 3)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 세가지 중에서 처음 두 가지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이방인에 대한 편견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이방인이 지나가면 유대인들은 <저기 개가 지나간다.>고 했겠습니까?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면, 과거 예루살렘성전 이방인의 뜰과 성전구내를 나누는 높은 벽이 있었습니다. 또 그 벽에는 성전구내에 침입하는 이방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벽이 십자가로 인해 허물어졌습니다. 유대인들만 들어올 수 있는 교회에, 이방인인 우리가 들어와 지금 예배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십자가가 이방인과 유대인을 한 몸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16절에<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본문 12절이 말씀하는, 그리스도밖에 있던 사람들, 선택받은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들, 소망 없이 살던 사람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던 사람들, 따지고 보면, 그들 모두 하나님의 원수 아니었습니까? 1)그런 그들과 하나님사이에 담이 허물어졌다. 2)유대인관의 벽도 허물어졌습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모여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는 그 어떤 편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지방색이나, 빈부나 지식의 유무로 인한 편견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지방색이 있는 교회가 있고, 인종갈등이 있고, 지식의 유무와 빈부를 따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참된 교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정말 갈보리 언덕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으로 구원 얻은 거룩한 성도들이라면, 주님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 되었다면 이런 편견은 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도 받아주셨는데, 내가 받지 못할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13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전라북도김제군 금산리에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이교회는 1908년 설립된 유서깊은 교회입니다. 이교회에 조덕삼이라는 장로님의 유명한 간증이 있습니다.

미국의 테이트 선교사가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면서 그 지역 지주이면서 마방을 운영하던 조덕삼씨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랑채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조덕삼씨의 말을 끌고 다닌 소위 머슴이지요, 마부인 이자익이란 청년도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주인인 조덕삼과 마부인 이자익이 함께 세례를 받고, 함께 집사가 되고, 함께 영수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장로 투표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투표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주인인 조덕삼은 떨어지고, 머슴인 이자익이 장로로 당선된 것입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머슴인 이자익은 전라도가 아닌 경상도 출신인 것을 온 교회 성도들이 다 알고 있었는데도 그가 피택된 것입니다.

투표결과가 발표되자 온 교회에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져 긴장감 마져 감돌았습니다. 그런데 조덕삼이 일어나서 발언권을 얻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오늘 참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당선될 사람이 당선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 아닐까요?

물론 나중에 조덕삼씨도 장로가 되었고, 그는 자기 머슴인 이자익장로를 신학교에 보내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자 그를 또 본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감동적인 사건은, 한참 후인 2005년 4월 29일에 일어났습니다.

대전신학교에서 이자익 목사님의 전기 출판 기념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조 덕상 장로님의 손자로서, 국회위원을 여러 번 지낸 조세형 장로님이 축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이자익 목사님의 손자인 카이트스 교수이자, 대전 제일교회 이규완 장로님이 조세형 장로님 앞에 먼저 머리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주인을 잘 만나셨습니다. 만약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 못 만났다면 오늘의 우리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도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고, 서로 높혀주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양보하는, 저는 우리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2.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합니다.

바울은 본문 22절 하반절에서<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한사람, 또는 물질이나 권력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두 사람 전도해서 차근차근 지어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종교가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생명은 멈출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본문 20-21절에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모퉁이 돌은 건물의 벽과 벽이 연결되는 곳에 놓는 기초석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모퉁이돌이 되셨다는 말은, 교회의 기초는 목사가 아니요, 장로도 아닌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초석으로 하여, 한사람 한사람 우리 각 개인이 서로 연결되어져서 거룩한성전이 지어져가게 된다는것입니다.

옛날 시골 돌 담장을 쌓아보신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요즘처럼 네모반듯한 블락으로 쌓으면 얼마나 쉽습니까? 그러나 돌담은 쌓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요? 네모난 돌, 둥근 돌, 세모난 돌, 뾰쪽뾰쪽한 돌, 가지각색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돌담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성격이 네모난 사람, 둥근 사람, 칼날처럼 날카로운 사람, 부자와 가난한자,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 병든자와 건강한자,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 등등, 별의 별 사람이 다 모여 함께 지어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다양한 사람들로 어떻게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아무리 별의별 사람이 다 모였다고 해도, 예수님의 보혈이 시멘트가 되기 때문에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갈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온 교회가 한 마음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마음을 같이하라, 같은 사랑을 가지라, 뜻을 합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교회가 한마음 될 때, 우리교회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우리교회에 소속한성도들과 가정이 복을 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저는 죽은사람 30여명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염을해본 적이 있습니다. 물질을 남겨놓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희생과 헌신을 남겨 놓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잘살다 갔습니까? 누가 사람답게 살다갔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씨는 아무데나 뿌려서는 안됩니다. 땀도 쓸데없는 일에 흘려서는 안됩니다. 씨는 뿌릴데 뿌려야 합니다. 땀은 흘릴데 흘려야 합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럽고 할말없는 유구무언의 자리가 아닌, 뭔가 할 말 있는 그 자리, 어엿이 설수 있는 그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씨를 뿌리고 땀을 흘려, 아름다운동산교회를 세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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