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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제6 강 영의 눈을 밝혀주옵소서!-기도 2(엡 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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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975회 작성일 1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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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적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영적전쟁, 영적기도, 영적말씀, 영적생각, 영적비즈니스, 영적대화, 영적인 꿈>등, 이렇게 영적이란 수식어를 같다 부친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그 집사님은 참 영적인 사람이다. 저 권사님은 참 영적인 눈과 귀를 가진 사람이야>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입만 벌리면, 영적, 영적, 자신이야말로 영적인 사람인줄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생각이나 말과 행동을 보면 전혀 영적이지 않습니다. 영적이란 말은 어떤 일의 종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그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에게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영적일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신앙좋은 사람이 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자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자면 저렇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나도 기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인간적인 소원도 미련없이 접을 수 있는 사람이 신앙 좋은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2: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소원을 가지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소원을 가지라, 그러면 이루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의 영적인 눈을 밝혀달라고 기도합니다. 본문 18절에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시니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우리는 두 종류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적인 눈이 있고, 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육적인 눈이 밝으면 세상 것은 뚜렷하게 잘 보이는 대신 영적인 문제는 어두워집니다. 반면에 영적인 눈이 밝으면 세상 것은 흐미하게 보여도 영적인 세계는 뚜렷하게 잘 보이게 됩니다.

1.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바라보는 소망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죄에 빠진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하늘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 무엇인지는, 로마서 8:18절 이하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넘어가서 21절에 보면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지난주간 신문에 보니까, 우리나라 자살자가 하루 평균 43명으로 드디어 세계 제 1위국에 올라섰습니다. 왜 자살하는 것입니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소망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예수를 믿는 순간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소망이 생기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도베드로는 그것을 <산소망, Living Hope>라고 했습니다.

잠자리 애벌레의 소망은 푸른창공을 날개 짓하며 훨훨 나르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의 소망은 감옥을 나와 자유롭게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범죄한 인간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1)죄에서 구원받고 새 생명 얻어 자유를 누리면서 사는 것이고, 2)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3)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속에 사는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 헛된 소망이 아닌 산 소망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졌다고 해서 세상을 등지고 살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물질 문화생활에서 벗어나 동떨어진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던 없던 여전히 물질은 필요하고, 이웃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본문이 말씀하는 풍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옛날 우리한국이 먹고 사는 문제, 질병의 문제, 자녀교육의 문제 앞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던 어려운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한국교회의 신앙초점은 내세적이었습니다. 밤하늘에 이상한 구름한 점만 떠도, 혹시 우리주님 다시 오시는 것은 아닐까? 다시 오실 주님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지나 삶의 질이 나아질수록 교인들의 신앙이 내세적에서 현세적으로 이동해 왔습니다. 옛날 못살던 시절에는 꽁당보리밥 한 그릇 앞에 놓고서도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에도 이 귀한 식탁에 앉아 음식을 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것 먹고 건강해서 오늘 하루 주님 뜻에 따라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아침저녁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십니까? 물론 밥 먹으면서 기도 안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까? 이것은 기름끼가 많고, 저것은 칼로리가 높다고 투정하는 것은 아닙니까?

옛날에는 삶이 고달프고 힘드니까, 어서 발리 저 천국에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큰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배는 부르고, 놀 것이 많아졌습니다. 이 땅에서 내가 할 것도 많아졌고, 볼 것도 많아졌기 때문에 일찍 죽을 수 없다. 그래서 내세에 내가 받을 복 지금 달라고 기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본문 18절에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에베소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풍성이란 단어가 나오면 우리는 먼저 물질을 생각합니다. 풍성은 본래 그 뜻이 가득채워 만족함을 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풍성은 꼭 물질의 풍부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질의 유무를 떠나 영혼적 만족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풍성의 만족은 세상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속에서만 얻어 누리게 되는 풍성이요 만족입니다.

3.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9절에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능력달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심히 부족하고 약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닙니까? 그리고 사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목적은 100% 육신적인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한 것 아닙니까?

바울은 지금 에베소교인들에게 큰 능력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미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큰 능력을 받았습니다. 전도의 능력, 기도의 능력, 사랑의 능력, 헌신의 능력, 우리가 이런 큰 능력을 받고서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쓸 만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두운데 자세히 보니,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를 명하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하고 요청합니다. 그러라고, 그래서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잘 걸어가다가 그만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면서 바다에 빠져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더러 걸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바다위를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왜요? 마태복음 14:31절에 보면, 베드로가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가 나옵니다.<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대구서문교회 이성헌 목사님이 플러턴에 와서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9:15분에 급히 전화를 걸어와서, 지금 사모님이 다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달려갔더니 그 사모님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심장에 쇼크가 와서 온 몸에 물이 한강이고, 거의 다 죽어가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등에 업고 내려와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5분만 늦게 왔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미국에서 공부도 했기 때문에 영어도 어느 정도 구사하고 미국을 잘 아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급하면 911에 전화해서 구급차를 불러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어어- 하다가 저를 부른 것입니다. 제가 5분만 늦게 갔으면 어쩔뻔 했습니까?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목사님은 911에 전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911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세금을 되돌려 받아가지 않은 사람이 20만 명입니다. 그들이 찾아가지 않아 쌓여있는 돈이 무려 61억달러나 됩니다. 찾아갈 수 있는 권리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찾아쓰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큰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끌어다 쓰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지난 전주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 믿음 안에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예수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다 들어 있다고,

그런데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왜요? 받아쓸만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창세가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독자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들을 묽어 나무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내리치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멈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칼을 내려놓고 옆을 바라보는 순간 수풀 속에서 양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아들 이삭대신에 그 양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양이 어떻게 그 높은 산꼭대기 수풀 속에 있었을까요? 하늘에서 떨어뜨렸을까요? 아니면 우닥방맹이처럼, 조그만 바위로 우닥방맹이 처럼 양을 만들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이례로 이미 이삭 대신 다른 제물인 양을 준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아름다운 동산교회 성도들 모두 영의 눈이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예비된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내 삶속에서 발견하고, 나에게 주신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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