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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원로목사 03/22/20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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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340회 작성일 20-03-2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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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노틀담 사원은 1163년 기초석을 놓은 뒤 3세기 그러니까 300년에 걸쳐 건축된 정말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입니다. 그런 노틀담 사원이 지난해 4월 15일 내부보수공사를 하던 중 화재로 상당부분이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찾는 많은 순례자들을 안타깝게 해고 있습니다.

노틀담(Notre-Dam)사원을 그린 세 화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화가는 노틀담 사원을 전면에서 그렸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아름답다고 자평했습니다. 다른 한 화가는 사원의 측면을 그렸고, 또 다른 한 화가는 노틀담 사원 안으로 들어가서 웅장하고 정교한 내부를 그렸습니다. 세 화가는 각기 나름대로 자신이 보고 그린 그림을 두고 <이것이 노틀담 사원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세 사람이 같이 동물원에 갔습니다. 코끼리우리에 들어가서 각자 나름대로 더듬어서 코끼리를 만져보았습니다. 한 맹인은 코끼리의 코를 만져보았고, 다른 한 맹인은 코끼리의 다리를, 그리고 또 다른 한 맹인은 코끼리의 넒은 배를 만져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각자 자기가 만져본 코끼리의 어떤 한 부위만을 두고 코끼리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우기다가 싸움이 벌어졌다는 정말 웃지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두 이야기의 골자가 뭡니까? 첫째 인간은 자기가 경험한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하는 지식의 한계성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 자신의 좁은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성숙하지 못한 신앙의 잣대로 상대방의 신앙을 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예배자세를 비판하는 가하면 다른 사람의 신앙행위를 위선이라고 말하기도합니다.

개척초기에 어떤 권사님은 교인들의 외모를 지적해서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온 한 여학생이 좀 산만하게 머리 파머를 한 것을 보고 얼마나 야단을 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는 슬리퍼 신고 교회에 와서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받는 것을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처럼 하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허물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런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남의 허물을 담는 자루는 목 앞에 달려 있고 자신의 허물을 담는 자루는 등 뒤에 있다> 그래서 남의 허물을 보면서도 자기허물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바 은사가 서로 다릅니다. 한 사람 한사람에 대한 기대도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만나주실 때도 똑 같은 방법으로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첫째 각자 받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이고, 둘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에 붙은 지체인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각자 맡은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 나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언젠가 주님 앞에 설 그때를 기억하고 최선을 다해 살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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