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5/20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조화를 이룬 은혜의 사건 > 동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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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원로목사 03/15/20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조화를 이룬 은혜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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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066회 작성일 20-03-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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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한국 오순절 교회가 내 걸었던 슬로건이 있습니다. <소위 삼박자 축복>입니다. 3박자 축복은 사도요한이 가이오 장로에게 쓴 서신인 요한삼서 1:2절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진다> 이렇게 이 세 가지 약속의 말씀은 동일선상에 놓고 해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세 가지에는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첫째 네가 예수 믿어 네 영혼이 구원 얻으면, 네 영혼의 집인 육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네가 하는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질 것이라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한국교회가 잘 못 가르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라고만 가르친 것이고, 둘째 신앙생활 잘하면 복 받는다고 가르쳐 온 것입니다. 물론 첫째도 둘째도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자기자녀들에게 복주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 사랑> 또는 <믿음 = 복>이라는 등식에 따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내가 어떻게 살던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이미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불쌍히 여겨 주실 뿐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도 마치 빚쟁이 찾아가서 독촉하듯이 자기필요를 얼마나 당당하게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도우미로 생각하고, 내 어려운 문제의 해결사 정도로 생각하고, 구하기만 하면 필요한 것은 모두 채워주시는 우닥방맹이를 손에 들고 계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에는 공의의 하나님이셨지만 신약시대에는 공의가 아닌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사랑 뿐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으로 우리 삶을 간섭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자가를 하나님사랑의 부산물 정도로 생각합니다. 물론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뿐이라면 자기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내가 사랑으로 너희를 용서한다.>고 한 마디 하시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자기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일까요? 죄는 반드시 심판해야 하는 공의의 성품 때문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공의로 우리대신 자기아들을 심판하시고 동시에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서 자기아들로 삼아주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늘 감사하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고 십자가에서 조화를 이룬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우리 삶에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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