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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원로목사 07/21/19 예수의 흔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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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906회 작성일 19-07-2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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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5세기 영국의 브리튼 제도에 아서왕(King Arthur)이라는 전설적인 군주가 있었습니다. 아서왕은 전투에서 돌아온 장군들에게 언제나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대는 희생의 상처를 안고 돌아왔는가?>

몸에 상처가 있으면 왕의 만찬에 참석시키고 상처가 없으면 만찬에 참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없으면 다시 전쟁터에 내보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 어쩌면 이와 똑 같은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는가?>

갈라디아서 6:17절에 보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쓴 편지의 결론 부분에서 예수의 흔적이야기를 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흔적은 헬라어로 <스티그마>인데 바울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소나 말 등의 가축이나 노예의 신분을 표시하기 위해 지워지지 않게 그 몸에 새겨두는 상처를 말합니다. <이 짐승은 내 것입니다. 이 노예는 나의 소유입니다.>라는 표시로 자기만의 고유한 글씨나 문양을 새긴 주물을 불에 달구어 짐승이나 노예의 이마에 지져서 낸 상처가 흔적(스티그마)입니다.

이 흔적은 신약시대 뿐 아니라 구약시대의 할레에도 기인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 제정된 할례는 아이가 태어나서 8일이 되면 남자성기의 표피부분을 조금 떼어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나중에 주님 앞에 내 놓을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흔적은 육체인 몸에 남겨질 수도 있고 심령 속에 새겨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과 고초를 당했습니다. 자기 몸 여기저기 매 맞아 상처 난 흔적, 이방인은 물론 동족으로부터 받은 마음 구석구석에 생긴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처와 흔적들은 자신의 유익을 구한 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만들어진 흔적입니다.

나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중에 주님 앞에 내놓을만한 예수의 흔적이 있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도 돋보이는 직분을 맡아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할 뿐 아니라 조금의 희생도 하지 않고 인정만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어찌 예수의 흔적이 만들어지겠습니까?

예수의 흔적은 아무에게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말로만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에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교만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에게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의 흔적은 첫째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에게 만들어지고, 둘째 복음의 빚 진자임을 알고 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만들어지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욕 듣고 무시당하고 시기 질투 당하는 그 순간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이 땅에서의 모든 일들을 직고해야 할 것인데 뭔가 당당히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 있게 내 보여줄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놓을 흔적 하나 없어 불행한 자리가 되지 않도록 예수의 흔적을 만들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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