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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칼럼

최명환 원로목사 09/02/18 그리스도인은 서로 주고받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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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277회 작성일 18-09-0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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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코틀랜드에 플레밍이라는 한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근처 습지에서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던 일손을 멈추고 달려가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 소년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 소년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고급 마차 한 대가 플레밍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잘 차려 입은 한 귀족이 마차에서 내리더니 자신이 바로 어제 플레밍이 구해준 아이의 아버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 고마워서 보상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플레밍은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면서 그 귀족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때 마침 농부플레밍의 아들이 집에서 나왔습니다. 귀족이 그 아이를 보고서는 <당신 아들인 것 같은데 내 아들과 똑 같이 교육을 시키고 싶소. 이 아이가 당신과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훗날 훌륭한 인재가 될 것이요>

그래서 플레밍의 아들은 그 귀족의 도움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영국 런던의 Saint Maria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세계최초로 페니실린을 개발한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1881~1955)입니다.

수년 뒤에 그 귀족의 아들이 폐렴에 걸렸습니다. 그때도 플레밍이 개발한 페니실린 덕분에 살아났습니다. 플레밍으로 인해 두 번이나 살아난 그 귀족의 아들이 바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입니다.

플레밍과 그 귀족처럼 그리스도인은 서로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주면 반드시 더 값진 것으로 받게 되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이든 악이든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우리주위에는 주고받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어본 경험이 없으면 받는 경험도 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제가 가까이 지내던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받을 줄은 아는데 줄줄은 모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길흉사에도 이 핑계 저 핑계하면서 가지 않습니다. 훗날 그 집사님의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제가 장례식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텅 빈 장례식은 처음 봤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족도 다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심은 대로 거두는 진리의 현장을 제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누가복음 6: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어야할 사람에게 주어라 그러면 내가 갚아 주겠다. 그런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잠언서 19:17절은 또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주는 구제를 해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갚아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 어떤 때는 한 주간도 못가서 갚아주시는가 하면, 그것도 준 것 만큼이 아니라 정말 예수님이 약속하신대로 흔들어 넘치게 갚아주셨습니다.

저는 우리 아름다운 동산교회 성도들 모두가 누가복음 6:38절이나 잠언 19:17절의 약속이 체험되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복음찬송 가사처럼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서로 주고받는 아름다운 관계 속에 성령의 능력과 기적이 나타나고 행복이 깃들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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