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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원로목사 04/29/18 찔림이 은혜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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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597회 작성일 18-04-2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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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교회들이 부흥회를 잘 하지 않습니다. 부흥회를 개최해도 교인들이 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부흥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호롱불을 손에 들고 두세 시간 수 십리 길을 걸어 가서 예배당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참석했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그만큼 말씀듣기를 사모했습니다. 말씀듣기를 사모하다보니 장시간의 집회에도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많은 병자에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산업화가 되고 교인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며 삶에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방송과 설교테이프를 비롯해 말씀이 여기저기 널려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흥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본 교회 교인들조차도 부흥집회에 참석을 잘 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 푸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옛날 부흥집회는 예수님 당시 세례요한의 설교처럼 주로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의 설교였습니다. 목사님이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해도 그 말씀을 달게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모이는 시간마다 통회자복이 일어나고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영혼이 때 묻지 않고 순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강단의 설교가 죄를 지적하거나 회개를 촉구하지 않습니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야기도 사라졌습니다. 교인들이 그런 말씀듣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교인들의 구미에 맞추고 아멘을 유도하는 내용들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의 한국교회를 위해 복음의 밑거름이 되어온 어른 목사님들은 한국교회강단에 복음이 사라졌다고 한탄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선지자 또는 목회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에 찔림을 받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많은 무리들 앞에서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7장에서는 스데반집사가 똑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뿐 아니라 스데반집사가 설교할 때도 무리들은 똑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찔림은 똑 같이 받았는데 반응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무리들은 찔림을 은혜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형제여 어찌할꼬!” 하는 통회자복이 일어났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7장의 무리들 역시 찔림은 받았지만 그 찔림의 반응이 “형제여 어찌할꼬!”가 아닌 이를 갈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분위기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찔림을 은혜가 아닌 저주로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를 강간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적진에 보내 죽게 한 살인교사죄를 저질렀습니다. 나단선지자는 다윗의 죄를 지적하여 신랄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그 책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마음에 찔림을 받았고 그 찔림은 죄에 대한 회개로 나타나서 말씀에 의한 마음의 찔림이 은혜와 축복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다보면 찔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찔림을 어떻게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소 좀 듣기 거북하고 나를 지적해서 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설사 목사의 의도적인 책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성령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나단선지를 통해 다윗의 회개를 촉구하듯이 목사를 통해 나를 깨우쳐주시기 위한 권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찔림이 인간적으로는 좋지 않지만 하나니의 말씀으로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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