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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원로목사 04/15/18 주 안에서 누리는 것만큼이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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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298회 작성일 18-04-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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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절대적인 의존관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복을 받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행위가 우리 삶 속에서 균형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거기에 인생의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복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허구한 날 아무데나 머리를 들이대는데 그것은 인간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려고 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참된 누림이 어떤 것인지를 모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부자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부자는 자신을 위해 가득 쌓아놓고 평안히 쉬며 배터지게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 누리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부자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문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부자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자신의 육적인 삶에 넉넉히 사용하는 것이 누리는 것인 줄 착각합니다. 돈이 많아 좋은 음식을 먹고 자주 여행도 가며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 누리는 삶인 줄 압니다. 그러나 참된 누림은 물질이든 건강이든 무엇이든지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건강주시고, 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고, 왜 비즈니스가 잘되게 해주시고, 왜 자녀들을 형통케 해주시는 것일까요? 나 자신의 육신적인 욕구만 충족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를 이사야선지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슬픔을 당한 것은 우리의 질고 때문이고,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한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며, 그가 징계를 받은 것도 우리의 나음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은혜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내가 받은 은혜와 복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가난한자에게 구제를 해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내 주위의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면 얼마나 즐겁고 마음 뿌듯한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김치 한 병이라도 담아다 주고 돌아오면 그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것같이 가볍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움켜쥐는 사람입니다. 단돈 1불이라도 내 주머니에 들어온 이상 내 보내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한 부류는 베푸는 사람인데 언제나 주머니를 열어놓고 삽니다. 어디 베풀 곳이 없는지 늘 이리저리 살핍니다.

그래서 마더 테레사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두배가 된다.>고 말했고, 예수님께서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붙여주신 연약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그것이 참된 누림이고 그것만큼이 인생의 행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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