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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칼럼

최명환 원로목사 01/21/18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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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883회 작성일 18-01-2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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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파사데나에 소재한 헌팅턴 라이브러리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예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이곳저것을 돌면서 구경을 하다가 나오는 길에 보니까 대나무를 심어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 대나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것은 대나무가 아름답고 잘생겨서가 아닙니다. 대나무마다 많은 글씨를 새겨놓았는데 거의 대부분 사람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로 새겼던 영어로 새겼든, 김 아무개, 박아무개, 정 아무개 Jane Jung, samuel kim등 열의 아홉은 한국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래도 저는 최아무개가 없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누구나 자기이름 나타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름을 남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름은 주위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자기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남겨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주위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데도 자기스스로 이름을 남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을 의존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세상의 흐름 속에 힙쓸려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은 죄악 세상에서 빛 되고 소금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죄악세상을 밝히는 빛이요 썩어 부패하지 않도록 세상 속에 뿌려진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으로 살기 위해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십자가의 희생을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빛이든 소금이든 자기희생 없이 어두운 세상을 비칠 수 없고 썩어져가는 세상에서 짠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교인들 그렇게 많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고 봉사하고 헌신합니다. 교회에서는 분명 빛과 소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서는 전혀 빛과 소금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모두들 입고 있던 그리스도인의 옷을 벗어버리고 더러운 세상 옷으로 갈아입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세상속의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살던 그 당시는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시대였습니다. 목숨을 내어놓지 않으면 빛과 소금으로 사는 삶의 흉내도 낼 수 없는 정말 악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런 시대에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일테면 죽여라 하나님이 살려주실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많은 신앙의 사람들, 다니엘도 테레사도 그 어떤 누구도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다소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결국에는 승리하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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