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환 원로목사 05/11/14 부모의 눈물과 어쩔 수 없는 자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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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여객선 침몰사건은 우리 마음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꽃 봉우리같이 다 피지도 못한 한두 명도 아닌 300명 가까운 고등학교 2학년의 꿈 많은 청소년들이 하루아침에 죽어간 그 사건이 어찌 쉽게 잊어질 수 있겠습니까?
생명의 분신인 자식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는 그 부모님들을 보면서 저도 부모의 한 사람이기에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물속에 갇혀 있는 자식을 생각하며 저 부모들이 흘린 눈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그 부모들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농도 또한 얼마나 진할까?
신체의 구조라는 한계만 없다면 그 부모들이 흘린 눈물은 홍수 때의 한강처럼 흘러넘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식을 생각하며 흘린 그 부모들의 눈물을 과학에게 분석을 의뢰하면 아마도 과학은 <그 부모들의 눈물은 수분이 몇%이고 염분 몇%>라고 아주 쉽게 대답할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며 흘리는 부모들의 눈물이 정말로 수분 몇% 염분 몇% 뿐일까요?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절한 사랑이 그 눈물속에 숨겨져 있음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그들이 흘린 눈물의 농도 또한 인간이 정해놓은 계기상의 한계가 아니라면 100퍼센트가 아니라 수백 수천 퍼센트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진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18장에 보면, 사랑할 수 없는 아들 압살롬에 대한 아버지다윗의 어쩔 수 없는 부성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머리를 풀어헤친 채 맨발로 울면서 유대광야 길을 걸어서 도망가야 했습니다.
드디어 에브라임 수풀에서 압살롬의 군사와 다윗의 군사들 간에 대 혈전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전령들이 계속해서 전쟁소식을 가지고 옵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전세가 어떻게 되었느냐 우리군사가 이기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당장 죽여도 시원치 않을 그 악한 아들, 아들이기를 거절한 압살롬을 생각하면서 <내 아들 압살롬은 잘 있느냐고 무사하냐고> 압살롬의 안부만 묻습니다.
결국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아버지다윗은 통곡을 합니다. 그동안 압살롬이 한 짓을 생각하면 <이 압살 맞아 죽을 놈 참 잘 죽었다>고 해야 할 텐데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하면서 위층으로 올라가 대성 통곡을 합니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입니다. 다윗처럼 사랑할 수 없는 자식이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랑, 그 사랑이 바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하나님도 자기자녀가 고통당할 때 눈물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서 14:17절에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달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망함이라>
하나님은 수많은 민족 다 제쳐두고 이스라엘을 선민 삼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므로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심판에 처해져 고통당하는 그들의 모습을 미리바라보시면서 그런 사랑할 수 없는 자기자녀 이스라엘백성을 사랑하여 눈물 흘리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자기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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