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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칼럼

최명환 원로목사 08/26/12 찍는 도끼에 향을 발라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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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885회 작성일 1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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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간혹 상식을 뛰어넘는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 특이해 보이는 사물을 접할 때나 아니면 식물 또는 곤충 한 마리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는 제가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발명가근성 때문일 것이고, 둘째는 어떻게든 하나님구원의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나갈 때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인류구원역사의 현장을 중동의 이스라엘로 삼으셨을까?

그런 생각으로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중동의 이스라엘을 구원역사의 현장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과 중동의 지리적인 특성이나 성경에 등장하는 나무들과 짐승, 그리고 정치 문화 사회적 풍습이나 관습과 전통 등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요단강과 사해는 하나님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도 그 배경이 당시 유대나라의 사회적 관습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사단마귀의 종으로 살아가던 범죄한 인간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구원 얻어 영생을 누리는 구원의 진리를 탕자비유보다 더 잘 가르쳐줄 비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만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닌 어느 나라를 구원역사의 현장으로 설정하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에 등장하는 그런 지리적, 자연적, 정치문화사회적 조건들을 볼 때 인류구원역사의 현장이 이스라엘 보다 더 좋은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루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여러 판화로 완성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모욕당하는 예수’ 등의 여러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는 작품마다 특이한 제목을 붙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중에는 ‘의인은 향나무처럼 자신을 찍는 도끼에 향을 바른다.’는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정말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는 제목입니다.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 향을 발라 주는 삶,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 아닐까요? 자신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무리들을 향해,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생전에 하신 말씀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새벽 우리 김진수 전도사님께서 설교 전에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 삼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도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 삶이 바로 향나무 같은 삶이 아닐까요?

향나무가 하늘로부터 아침이슬을 받아먹고 살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으면서 살아가는 구원 얻은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스데반 집사처럼, 나를 내리 찍는 도끼 같은 자에게도 향(그리스도의 사랑)을 발라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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