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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Count: 2228 11/01/13
제 19강 09/23/07 갈등속에서의 문제해결(창 13:1-13)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혈연관계인 가정은 물론 신앙공동체인 교회안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어디든지 갈등이 있습니다.

  스폴죤 목사님의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한 형제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합니다.“목사님, 제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제가 상처받지 않을만한 좋은 교회를 소개해주십시오”

  그 때 스폴존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형제여, 형제님이 만약 이 세상에서 그런 완벽한 교회를 찾거든 나에게도 꼭 알려주시오, 나도 그 교회의 멤버가 되고싶소, 그러나 당신은 절대로 그 교회의 멤버가 되지 마시오, 당신이 그 교회의 멤버가 되는 그날부터 그 교회의 평화는 깨질 테니까 말이요”

  왜 세상에 평화가 없습니까? 왜 모이기만 하면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까? 불완전한 인간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가 깨어지고 난 이후부터, 범죄한 인간이 모인 곳은 어디든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아브람과 조카 롯 사이에도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피를 나눈 삼촌과 조카사이입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로 다짐하고 고향을 떠나 먼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그런 그들 사이에 왜 갈등이 생겼습니까?

  서로들 재산이 너무 많아져서 생긴 갈등입니다. 본문 6절에“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갈등의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돈 때문일 수도 있고, 권력 때문일 수도 있고, 남녀간의 애정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탐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종종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때로는 더 이상 함께 거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갈등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오늘본문은 아브람을 통해 갈등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인생의 더 큰 그림을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갈등에 휘말리게 되면, 그 갈등 때문에 우리 인생의 큰 그림을 놓칠수가 있습니다. 갈등은 언제나 별것 아닌 작은 문제에서 시작됩니다.

  내 비위를 상하게 하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가 갈등이라는 함정속에 빠지게 합니다. 하루 품삭도 안 되는 적은 금전 문제가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가 그런 작은 문제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갈등이라는 마귀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다가 우리 인생의 더 큰 것, 더 소중한 것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내 인생의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아브람이 롯에게 자기 심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다시말하면,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인데 싸우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람은 이런 문제로 서로 갈등하는 것보다 형제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볼 때는 돈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형제가 뭐 중요 하냐, 형제니 머니해도 머니가 더 중요하지”

  돈이라는 것은 요물과도 같습니다. 돈이 없어도 갈등이 생기고, 돈이 너무 많아도 갈등이 생깁니다. 저희가문에 정말 부끄러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12년 전에 한국에 특별조치법이 생겼습니다. 특별조치법은 옛날 등기가 되지 않고 떠 있는땅을 찾아서 두사람의 증인을 세워 그 자손들에게 돌려주는 법이었습니다.

  우리집안의 장자장손인 저는 당시 미국에 와 있었고, 제 동생들은 서울과 부산에 살고 있었습니다. 시골집에는 어머니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증조할아버지의 땅 3건이 발견되어 등기를 하라는 공문이 집으로 왔습니다.

  제 어머니가 서울에 사는 동생 집에 가고 없을 때였습니다. 한 동네에 살고 있던 삼촌이 저희 집을 둘러보러 왔다가 그 공문을 발견하고는 가져갔습니다.

어머니가 집으로 서울에서 돌아오자 인감도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어디쓸 것인지 묻지도 않고 주었더니, 삼촌 두 분이 그 땅을 나눠가지고 자기들 이름으로 등기를 하고서는 꿀꺽해 버린 것입니다. 한참 후에 그 소식을 들은 저는 “다른 집 삼촌들은 몰라도 우리 삼촌들이 어떻게 이럴 수 가 있을까?” 삼촌 한분은 장로님이시고, 다른 한분은 안수집사였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큰 땅이라서 어쩌면 수억도 더 되는 상당한 금액이라고 합니다. 그 일로 인해 제 어머니는 마음병이 생시고, 저 또한 너무 괘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재판을 통해 찾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도 피는 나눈 삼촌조카지간이 아닌가?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나눈 장로들 간에 세상재판을 해서 되겠는가? 동생들과 함께 의논해서 그냥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가족들 간에, 믿는 성도들 간에 갈등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과 롯이 갈등하고 있는 현장에 누가 있습니까? 본문 7절 하반절에“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아브람과 롯이 다투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을 기록했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다투고 있는 현장을, 이방사람들인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 싸우는 것 불신자들이 다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발 불신자들 앞에서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성도들이 되가지고, 불신자들이 보든지 말든지, 저 예수쟁이들이, 비난을 하든지 말든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싸우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교회의 이미지를 흐려놓습니다. 전도의 문을 가로 막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왜 그러는 것입니까? 그것은 내가 구원얻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엄청난 축복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고, 서로 갈등하면서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 될 더 큰 이슈가 있습니다. 내 인생의 더 큰 그림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 예비된 더 큰 축복, 영원한 천국백성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려나가기 위해 작은 갈등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믿음에 근거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아브람이 롯과의 갈등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본문 9절에 보면 아브람이 롯에게 선택권을 줍니다.“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아브람이 양보의 미덕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카야, 여기가 아니라도 우리 앞에 넓은 땅이 있지 않니, 우리가 함께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네가 좋은 곳을 선택해라, 나는 네가 먼저 선택한 뒤에 남은 곳으로 옮기겠다.”

  그래서 롯이 먼저 소돔성을 선택했습니다. 본문 10-11절 이하를 보시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아마도 아브람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믿음은 지금 당장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실 것을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당장의 이익을 생각지 않습니다. 당장은 내게 좀 손해가 되더라도, 내게 좀 불리해보이더라도 신실하신 주님을 믿고, 그 결과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먼저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조카와 화목을 원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 다음에는 형제와 이웃간에 화목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50절에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밭에서 갓뽑은 배추가 아무리 빳빳해도 소금을 치면 부드러워집니다. 부부가 싸우다가도 어느 한쪽이 먼저 소금을 치라는 것입니다. 여보, 내가 잘못했소, 이 한마디도 소금이 될 수 있고, 장미꽃을 한다발 사오는 것도 소금이 될수 있고, 저녁식사를 초대하는 것도 소금이 될수 있습니다.

  양보도 아브람처럼 믿음 좋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소금치는 것도 믿음 좋은 사람이 합니다. 별 것 아닌 것 붙잡고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사람, 항복을 받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믿음 없는 사람입니다. 꼭 내애기 하는 것 같습니다. 마는.

  롯은 아브람이 키운 조카 아닙니까? 그러면“삼촌, 삼촌께서 먼저 선택하세요”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롯이 먼저 소돔성을 선택하고 차지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14장에 가면 그돌라오멜이라는 이방왕에게 롯의 식구들이 붙잡혀 갑니다. 아브람이 318명의 종을 거느리고 가서 구해줍니다. 그것뿐입니까? 나중에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소돔성을 심판하실 때, 롯은 사랑하는 아내를 소금기둥 만들어 놓고 딸 둘만 달랑데리고 도망 나옵니다.

  예수님의 생애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3년 공생애를 사는 동안에 대제사장들과의 갈등,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천군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가만히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죽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지셨습니까? 영원히 죽으셨나요? 결국 승리하셨지 않습니까? 로마에 가면 예수님의 동상이 있습니다. 로마사람들이 얼마나 머리를 숙이고 입을 맞추었던지 그 동상에 예수님의 무릎이 많이 다를 정도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길에는 부부사이에, 부모자식 간에, 성도들 간에 갈등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인생의 더 큰 그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싸우지 않으시고, 원망도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셨던 주님, 그 주님을 생각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아브람처럼,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죽어져서 갈등의 현장을 평화의 현장으로 바꾸어나가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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