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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Count: 1682 10/31/13
제 12강 07/08/07 교회와 구원의 방주(창 6:13-22)

 지난 4월 22일 밤, 부산에 사는 36살의 김모씨는 회사의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자기 친아버지를 정신병자로 둔갑시켜 밧줄로 묶었습니다.그리고는 구급차에실어 경기도 시흥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다 발각이 되어 구속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회사경영권이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도대체 돈이 뭐길래 자기 친 아버지를 노끈으로 묶어 정신병원에 감금시킵니까?

  오늘 본문에도 악한노아시대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보시면 그 시대가 얼마나 악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시리라”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죄악이 세상에 가득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심판을 예고하십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방주를 짓는 방법과 방주의 설계도 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제시하셨습니다.

  방주는 길이가 300규빗이고, 넓이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이었습니다. 우리식으로 계산하면, 방주의 길이가 137m이고, 폭이 23m, 높이가 14m입니다.

  방주는 3층으로 만들어졌는데 축구장 세개 정도되는 크기입니다. 이 정도의 크기라면 화차 500량의 규모로서 십이만 5천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방주는 노아 당시 생존한 약 5만 종류의 모든 짐승을 암수 둘씩, 그리고 깨끗한 짐승은 일곱 마리씩 실을수 있는 거대한 방주였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방주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방주는 단 하나뿐인 은혜의 구원선입니다.

  방주는 노아의 여덟식구를 홍수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신 은혜의 구원선입니다. 어떤 인류학자는 당시 인구가 20억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구가 20억이든 1억이든 문제는 방주에 들어온 노아의 여덟식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온 세상이 홍수심판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방주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 은혜로 주신 구원선이요 생명선입니다. 따라서 방주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몸 된 교회를 예표합니다. 

  방주를 연구한 학자들은 방주는 전혀 속도를 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저 물위에 뜨기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방주는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홍수심판에서 완전하게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 항해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년 전쯤입니다. 한국에서 갓 이민온 어떤 분이 아들 딸 둘을 데리고 저희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삼사 개월 저희교회가 이것저것 잘 돌봐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교회는 영어를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교회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 그러시라고, 보내드렸습니다.

  한 달 쯤 뒤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했더니 하는 말이, 사랑의 교회는 자기 아이들이 싫어하니, 영어 가르쳐주는 다른 큰 교회를 하나 더 소개해 달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목사로서 다른 교회를 소개까지 해서 보내야 하는 마음, 여러분은 이해가 되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마음이 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친절하게 다른 큰 교회를 또 소개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무엇하는 곳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물론 영어를 가르쳐주는 것이 복음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면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배우는 목적으로 어떤교회를 나간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문제만 다루어야 합니다. 장사 잘되게 해주는 곳이 아닙니다. 병 고치는데도 아닙니다. 죄 가운데 빠진 영혼을 구원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먼저 구원얻고 나면, 장사 잘되게 해주십니다. 영육 간에 건강주십니다.

  자녀의 앞길도 형통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고 나면, 우리가 하나님 자기자녀인데, 자기자녀 잘되도록 해주시는 것 당연한 것 아닙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가 사회운동에 뛰어듭니다. 정치에 참여하고, 인본주의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거룩한 교회에 세속적인 것들이 들어와 교회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주의 문은 삼층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뿐인 그 문은 하늘을 향해서만 열려있었습니다. 왜 문이 하나뿐일까요? 왜 하늘을 향하게 만들었을까요?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선 답게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하나님은 잣나무로 방주를 짓되,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방주의 안팎을 칠해서 물이 배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 방주의 안팍을 칠한 역청은 나무의 송진입니다. 송진인 역청은 히브리어로 코페르라고 합니다.

  코페르는 ‘속죄하다, 생명의 값을 치른다’ 는 뜻입니다. 따라서 역청은 세상의 죄악이 방주인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방주 또는 교회를 죄악세상과 구별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악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예수의 보혈의 의의 옷을 입고 악한 세력이 내 심령을, 내 가정을, 내 교회를 틈타지 못하도록 무장해야 합니다.

  요즘 종교다원주의가 우리 기독교에 파고 들어와서 자유주의적 사고를 가진 젊은이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도 하나님을 한분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인도나 중국인들은 석가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이슬람은 마호메트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선뜻 듣기에는 얼마나 그를 듯해 보입니까?

  방주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방주의 문도 오직 하나였습니다. 왜 방주가 하나뿐입니까? 왜 방주의 문이 하나였습니까?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것 외에는, 구원의 다른 방법이 없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예수 외에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요한복음 14:6절에도“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만이 내가 구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모두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창을 여십시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과의 영적 깊은 교제속에서, 만유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풍성함을 받아 누리면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방주로 들어오는 자만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죽을 뻔 한 것이 좋습니까? 살 뻔 한 것이 좋겠습니까? 죽을 뻔 한 사람은 죽게 된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난 사람이고, 살 뻔 한 사람은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아쉽게 죽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죽을 뻔 한 사람이 더 좋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아그립바왕이 나옵니다.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그러자 그는 거의 그리스도인이 될 뻔하였다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아그립바 왕처럼, 예수믿을 뻔하다가 만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요즘으로 처도 엄청나게 큰 배에 해당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일에, 셈과 함과 야벳 등 세 아들들만 동원되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요즘처럼 기계화되지 않은 시대라서, 나무를 찍어 자르고, 다듬고 운반하고, 조립하고, 역청을 바르기 위해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5절에 “노아가 의를 전파했다”고, 한 기록을 봐서,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방주를 만드는데 동원된 목수들도 분명 전도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방주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 목수들은 구원받을 뻔 하다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드나들고, 강대상 밑에까지 가 보았지만, 구원과 거리가 먼 사람들, 구원얻을 뻔하다가 구원얻지 못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마지막 주님오시는 그날 구원얻을 뻔한 사람이 아닌, 멸망 받을 뻔 했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7절과 18절에“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방주가 완성되자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문 7:1절에“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한글개혁 성경이나 영어 Niv성경에는 Go into the ark ‘방주로 들어가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King James Version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어성경에는 Go가 아닌, Come into the ark, 방주로 들어오라로 번역되어져 있습니다.

  히브리원어에 보면 들어가라는 말이 ‘보’라는 단어로 씌여졌습니다. 이 ‘보’라는 단어는, 가다라는 뜻도 있지만, ‘들어오다’라는 뜻이 더 강하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Go와 Come, 들어가라와 들어오라는 말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방주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불교는 참선을 하고, 도를 닦으라고 말합니다.  저리 가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주님은 저리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도를 닦고 참선을 해야 구원얻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쫓으라, 내게로 와서 마시라.

   방주로 들어오라는 말씀은, 1)하나님께서 방주 안에 이미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2)방주로 들어오면, 내가 너를 홍수심판에서 완전하게 지켜 보호해주겠다. 때가되면 완전하게 너를 밖으로 이끌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6:18절에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언약은 노아의 식구들에 대한 구원의 언약입니다. 동시에 오늘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언약이기도 합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방주는 노아에게 은혜의 구원선이요 생명선이었습니다. 우리의 교회도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혜의 구원선이자 생명선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계시록 22:17절에“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우리 모두 명목사의 교인이 아닌, 구원의 방주인 교회 안에 들어오셔서, 구원의 감격을 누리시면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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