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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Count: 3010 11/09/13
제 24강 02/15/09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창 17:-8)

창세기 16장 마지막절에 보시면, 아브람이 여종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을 때가 86세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아브람이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86세부터 99세까지 13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13년 동안 한번도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13년 동안이나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지 않으셨을까요? 왜 침묵하셨을까요?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않고, 여종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 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비록 종을 통해 낳은 아들이지만 86세에 낳은 자기아들 아닙니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칼빈은 이부분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아브람이 서출아들인 이스마엘에게 홀딱 빠져 하나님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우리가 하나님의은혜를 사모하지 않고,세상재미에 빠져 살게 되면, 혹시 징계의 매를 드시는 경우는 있어도, 나를 만나주시지 않으시고, 은혜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시지 않고 내버려두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모른 채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자기자녀를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13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뒤에,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자기뜻을 이루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엘 샤다이 하나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여기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이라는 말은, 히브리원어로 '엘 샤다이'입니다.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샤다이는 ‘충분하다, 자족하다, 가능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번역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샤다이의 히브리어 어근이 샤드인데, 샤드는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어머니의 젖가슴 또는 깊은 계곡이 있는 높은 산을 뜻하는 말입니다.

40대 초반의 어떤 젊은 여집사님이 유방암으로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유방을 절제하면 이제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도 없는 내가 무슨 여자냐? 그런데 내가 왜 살아야 하느냐고, 며칠 밤을 혼자 울면서 통곡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높은 산을 마주하면 기가 죽지 않습니까? 아무리 돈 많고, 권력가진 남자라도 여자의 젖가슴 앞에서는 기가 죽습니다. 저도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또 어린아이도 엄마의 젖가슴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합니다. 울다가도 엄마젖가슴 앞에서는 뚝 끄칩니다. 말을 안듣다가도 엄마젖가슴 앞에서는 온순해 집니다. 왜요? 엄마의 유방에서 자기의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수가 있으니까,

  엘 샤다이 하나님은, 높은 산처럼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대적할 수 없고, 굴복할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엘샤다이는 엄마의 유방처럼 자기자녀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수 있는 이름입니다.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여러가지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경에 보면 무려 18가지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여호와로 찾아오시지 않으시고, 임마누엘이나 다른 이름들로 찾아오시지 않으시고, 엘 샤다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셨을까요?

  아브람의 나이가 이제 99세입니다. 99세면 남자구실을 하지 못할 나이입니다. 아내사래도 경수가 끊어져 생리적으로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아브람에게 약속한 아들을 낳게 해 주실, 하나님의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시기 위해서,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늘 칼럼에도 썼습니다.마는. 욥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열 자녀가 다 죽었습니다. 비즈니스는 풍지박산 나고, 몸에는 악창이 나서 고통스럽고, 아내는 저주하면서 도망가고, 친구들은 욥의 심장만 박박 긁어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욥이 당한 현실을 재기불능상태의 동굴에 빠진 것으로 볼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동굴로 생각지 않습니다.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욥기 23:8-10절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간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혹시 아브람처럼 인간적인 한계의 벽에 부닥쳐 포기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삶의 문제로 이제 내 인생 끝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욥처럼 내가 처한 상황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동굴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에 따른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인 가능성이 다끝난 아브람에게 아들주시기위해 찾아오신,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 문제, 해결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완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1절 하반절에 보시면,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기 완전하다는 말은, 하나님앞에 흠없는 깨끗한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아브람은 장차 모든 인류를 위한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앞에서 완전하게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여종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으라”는 아내 사래의 제안을 받아드린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이 아닌 이스마엘 붙잡고, 히히낙낙 하고 사는것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것일까요?

  제가 한국에 가서 어떤 목사님 차를 타고 산길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GPS라는 주먹만한 기계가 차에 달려있는데 예쁜 목소리의 아가씨가 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고속도로가 아닌 산길인데도 어떻게 알고 그러는지,

  나근나근한 목소리로“굽은 길이 나옵니다. 운전조심하세요. 여기는 사고 다발지역으로 20km 지점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속도를 줄이세요, 속도를 줄이세요, 속도를 줄이세요, 이놈아 속도 줄여” 하는데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지금도 그 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GPS 기계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 그 기계를 만든 메이커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재미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이 만든 위성전파로부터 지시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은행을 가든, 백화점을 가든, 관공서를 가든 하루에 두세 번씩 사진에 찍히고 살아갑니다. 이런 시대적상황에 민감하지 않으면 뒤처질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안내해주는 영적 GPS가 있습니다. “너 왜 주일예배를 자주 빠지냐? 너 왜 자녀에게 신앙생활의 본을 보이지 않는냐? 너 왜 전도하지 않고, 기도생활 하지 않는 것이냐”

  우리의 영적 GPS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잘못된 길을 지적해주십니다. 우리 삶을 간섭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간이 만든 GPS와 네비게이션의 인도는 받으면서, 성령하나님의 영적 GPS를 외면합니다. 모두 따라하십시다.“집사님, 영적 Gps의 인도를 받고 살아갑시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앞에서, 신전의식을 가지고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하나님은 축복의 약속을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람과 사래가 인생의 Turning Point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하나님께서 이름을 새로 지어주십니다.

  본문 3절 이하에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새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람이란 말은 본래 ‘높으신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새로 지어주신 이름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가족과 민족을 뛰어넘어 세계 모든 열방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약속아닙니까? 훗날 이약속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모두 본래 이스라엘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이 되었습니다. 또 영적 이스라엘백성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 17:15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도 사라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사라는 그 이름의 뜻이 공주에서 왕후, 열국의 어미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라에게 열국의 아비와 어미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언약을 맺어주셨습니다. 7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맺어주신 언약, 우리에게 주신 언약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 우리 것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6:13,1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야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아브라함이 부럽습니다. 도대체 아브라함이 어떤 존재였길 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나보다 더 큰이 더 높으신 이가 있으면 그분 이름으로 너에게 맹세하고 싶구나, 그러나 이 세상에는 나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이가 없기에 내 이름으로 네게 맹세한다.고 했을까?

  계속보십시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으로서 변개치 않으시는 지존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약속할 때 반드시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도 반드시라는 수식어를 사용합니다. 도대체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였길 래,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복 주고 복 주고,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나님이시기에 한번 너에게 복을 주겠다, 너를 번성하겠다, 고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도 두 번씩이나 같은 말을 반복해서, 너를 복 주고 복 주고,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는 것일까?

  저는 이 시간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 심령 속에 찾아오셔서, 여러분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해주시고, 또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 같은 놀라운 축복이 주어지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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