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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Count: 137 09/26/20
09/27/20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어느 날 꾀꼬리와 부엉이와 까마귀가 서로 자기소리가 아름답다고 우기면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자 호랑이를 찾아가서 판결을 받기로 했습니다. 마침 몸이 아파 누워있던 호랑이는 내가 지금 몸이 아프니 15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까마귀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기소리가 꾀꼬리의 소리를 따라 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15일 동안 호랑이에게 날마다 쥐 한 마리씩을 잡아다가 바쳤습니다. 약속한 15일이 지나 다시 모였습니다.

호랑이는 이렇게 판결했습니다.<꾀꼬리는 소리가 아름답기는 하나 심히 교만하게 들리고 부엉이의 소리는 장하기는 하나 어쩐지 슬프게 들린다. 그런데 까마귀의 소리는 둔탁하기는 하지만 웅장하고 박력이 있으니 까마귀의 소리가 최고로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호랑이의 판결같은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시편 78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친히 판단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성경은 하나님만이 의로운 재판장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판단의 권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판단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 대신 내가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들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해서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판단하고 누구를 정죄할 수 있습니까? 판단이란 단어의 어근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무의 뿌리를 본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은 땅 속에 묻힌 나무뿌리를 볼 수 없습니다. 흙으로 덮여있는 땅 속의 나무뿌리는 하나님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판단은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나님만의 고유권한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욕도 듣고 누명도 쓰고 수모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주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옛날에 누군가를 저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어떤 허물도 덮어주고, 감싸 안아주고, 못 본체 건너뛰어 주시고,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사랑을 입고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그 사랑을 입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주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괴롭히고 내게 손해를 입인 원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저주는 물론 그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있는 모습그대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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